[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피크 코리아' 아닌 '두 번째 한국'으로
2023-12-20 05:00
일본의 경제지 <머니1(Money1)>은 “한국은 끝났다(韓国は終わった)”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제기된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이 분명 불편한 감정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혐한 매체의 단순한 비난적 표현들은 무시할지라도, 논리적 비판이 하나라도 있다면 겸허히 수용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놓여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저성장 체제에 놓이게 될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저성장을 수용해온 한국 경제
한국 경제는 1970년대 14.9%에 달하는 고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1990년대까지 고성장기를 보냈다. 한국전쟁 이후 극도로 못살던 나라에서 2018년 세계 GDP 10위 국으로까지 도약했다. IMF, OECD, World Bank와 같은 주요 국제기구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을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모습과 달리 최근의 실정을 보면 한국 경제가 자존심을 구긴 듯하다. IMF가 전망한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1.4%로, 일본의 2.0%보다 낮다. 2023년 1.4% 성장률은 현대 경제사에 겪었던 4번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장률이기도 하다. IIF(국제금융협회)의 Global Dept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 규모(GDP 대비 비율 기준)가 조사대상국 중 한국이 가장 크다. 2023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실질성장률 하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1980년대 9.7%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다가, 1990년대 7.3%, 2000년대 5.1%, 2010년대 3.0%로 내려왔다. 2020년 초에는 잠재성장률이 그나마 2.2%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2024년 이래 2%대마저 밑도는 1.8%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즉, 향후 2%를 웃도는 실질성장률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제로 성장의 시대 오는가?
수십 년 동안 고성장 시대에서 중성장 그리고 저성장 시대로 내려온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더 내려갈 것인가’가 쟁점이 되겠다. OECD는 세계 주요국의 장기 1인당 잠재성장률을 추정했는데, 2030~2060년 동안 한국은 0%대로 떨어져 0.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사대상인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1인당 잠재성장률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로 성장의 시대 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OECD도 ’그렇다‘라고 답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OECD 회원국의 평균 1인당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1.3%에서 2030년대 1.1%로, 미국은 같은 기간 1.2%에서 1.0%로 완만하게 둔화하는 흐름이다. 일본은 오히려 같은 기간 1.0%에서 1.1%로 올라선다. 개발도상국들은 대체로 1인당 잠재성장률이 상승하는 흐름인데, 예를 들어 맥시코는 1.1%에서 1.5%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한국의 1인당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1.9%에서 2030년대 0.8%로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주요국 1인당 잠재성장률 전망(단위 %, %P)
무엇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가?
잠재성장률은 크게 노동투입, 자본투입, 총요소생산성으로 구성된다. 2020년까지 3가지 요인 모두 기여도가 떨어져 왔고, 이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지속해서 하락해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각각의 요인별로 상황을 진단해 보자.
첫째, 노동투입이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구는 2023년 약 5171만명에서 2024년 5175만명으로 소폭 늘었다가 이듬해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으로도 인구감소가 지속하여 2041년 들어 인구 규모가 5000만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통계청은 추계한다. 인구감소 속도보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더욱 빠르게 감소할 전망이고, 이는 앞으로 노동투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어렵게 만든다. 노동력의 감소는 인건비 상승을 야기하고, 세계 시장에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자본투입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저성장은 저성장을 야기하는 법이다. 기업은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투자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는 신규투자를 단행할 수 없다. 미래에 도전하기보다, 현재에 안착하고자 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여기면 더욱 그러하다. 해외직접투자(FDI) 역시 저성장에 직면하고, 시장규모가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 한국보다,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미래 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는 신흥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셋째, 총요소생산성은 한국 경제를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요소다. 총요소생산성은 전체 생산요소의 결합적 투입에 대한 전체 산출규모의 비율로서, 생산성을 분석하기 위해 널리 활용되는 지표이다. 쉽게 말해 생산성이라고 표현하겠다. 모든 경제활동은 ‘투입(input)→과정(process)→산출(output)’로 구성된다. 피크 코리아는 노동투입과 자본투입이 줄기 때문에, 산출이 늘어나기 어려운 경제구조라고 재정의해 볼 수 있다. 남은 것은 ‘과정(process)’이다. 노동 및 자본의 투입이 줄어들지라도 과정의 혁신이 있다면,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하지 않을 수 있다.
잠재성장률과 요인별 기여도
‘두 번째 한국’, 성장동력을 찾아서
‘피크 코리아’라는 일본의 지적이 틀렸음을 보여주자. 다시 뛰는 한국, ‘두 번째 한국’을 만들어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비아냥대는 비난일지라도, 이념적 프레임을 기반으로 정치적 억측일지라도 우선 그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한국 경제를 뒤돌아보자. 한국 경제의 무엇이 고장 났는지,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자문해 보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번째 한국’은 없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최대한 막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에 순응하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노동투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여성이 더는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근로환경을 조성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청년의 일할 의욕을 고취하고,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더욱이, 해외로부터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조성하고, 외국인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신산업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 자본투입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다. 산업생태계를 바꾸어 자본투입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산업에 매달리고 안도해서는 안된다. 유망산업으로 진출하고, 신상품을 개발하며,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끊임없이 전환하고 있는데, 기업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유연한 규제환경을 조성하고, 기업들이 전통산업에서 신산업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안주하는 기업이 아니라, 도전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 참여를 이끄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자. 이가 없으면 잇몸이 있지 않은가? 노동과 자본의 ‘투입(input)’이 줄지라도, ‘과정(process)’의 혁신을 통해 ‘산출(output)’을 늘려야 한다. 일하는 방식의 전환, 창조적 경영 혁신, 기술혁신, 교육 혁명, 효율적 행정, 선진화된 정치, 제도 개선 등 한국이 이뤄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일어서서 ‘두 번째 한국’을 향해 다시 뛰자. 스티브 데이비스의 명언을 인용하겠다. “넘어진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