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란의 배터리 아틀라스] 전고체, 나트륨?…쏟아지는 배터리 종류
2023-12-11 17:40
[편집자주] '지도책'이란 의미를 지닌 아틀라스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다. 인간이 사는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바로 서 있는 것은 거인신 아틀라스가 땅덩이를 어깨에 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터리는 주요국의 산업을 떠받드는 '거인신'이 됐다. 첨단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래 기술의 가늠자가 필요하고, 배터리는 신산업 지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패권을 쥐기 위한 각국의 전략과 갈등 관계, 여기서 파생된 기술 경쟁을 파헤쳐 본다.
LFP(리튬인산철)배터리, 삼원계 배터리, 각형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이제는 '나트륨' 배터리까지….
최근 주요국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배터리를 지목하고 적극적인 육성에 나서고 있다.
화학전지에는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일차전지와 방전 후 재사용이 가능한 이차전지 등이 있다. 최근 가장 '핫한' 배터리가 바로 이차전지 종류 중 하나인 리튬이온배터리(Li-ion Battery)다.
현재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모두 리튬이온배터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배터리를 충전할 땐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전자와 분리돼 음극(-)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차가 달릴 때는 리튬이온과 전자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다시 넘어오며 전기 에너지가 발생하는 게 기본 원리다.
이때 언급되는 배터리 종류도 다양한데, 업계 종사자조차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공학적으로는 모두 리튬이온배터리지만, 배터리 4대 구성요소(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에 쓰이는 재료나 배터리 폼팩터(형태)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한 개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N개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일부 공학자들은 판매 전략으로 쓰인 이런 분류법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4680배터리가, NCM 배터리이기도 한 까닭
먼저 양극재에 따라 이름이 갈리는 경우가 있다. 니켈, 코발트, 망간 세 물질을 섞어 양극재를 만든 삼원계배터리(NCM)와 리튬인산철을 사용한 LFP가 대표적이다.
반면 LFP 배터리는 값이 싸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에너지 밀도가 높지 않은 대신 섭씨 35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폭발하지 않는 등 안정성이 뛰어나다. 해외 유수의 전기차 제조사가 LFP 배터리를 선택한 건 역시 가격 때문이다. 값비싼 니켈과 코발트 대신 인산철을 사용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리튬메탈배터리는 양극이 아니라 '음극' 소재를 바꾼 신제품이다. 흑연계 음극재를 리튬메탈로 대체해 기존 음극재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여 에너지 밀도와 주행거리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최근 중국 정부의 흑연 수출제한 조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흑연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각광을 받기도 했다.
4대 구성 요소가 아닌 배터리 형태에 따라 새 이름을 갖는 경우도 있다. 현재 판매 중인 배터리는 크게 원통형, 파우치형, 각형으로 나뉜다. 테슬라가 낙점한 '4680 배터리'는 원통형 배터리 중 하나다. 배터리 지름 46mm, 길이 80mm 크기의 원통형 배터리로, 기존 원통형 규격인 18650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5배 높고 제조비용이 낮아 전기차 주행거리를 크게 늘려준다는 장점을 있다. 4680 배터리는 다양한 양극재를 채택할 수 있지만, NCM 등 삼원계 양극재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리튬이온배터리 시대의 종말?
앞선 배터리가 큰 틀에서 리튬이온배터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리튬이온배터리'라는 일변도가 깨지기 시작했다. 리튬이온을 대체한 나트륨이온배터리(나트륨 배터리)가 주목받으면서다. 나트륨 배터리의 작동 원리 자체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동일하다. 다만 전하를 이동하는 매개체가 나트륨이라는 점만 바뀌었다. 리튬의 가격은 탄산리튬 기준으로 톤(t)당 약 3만5000달러인데 비해 나트륨은 약 290달러에 불과하다.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세계 주요국의 대중국 디리스킹(위험 제거)이 본격화하면서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원소재 시장에서 의존하다, 자구책을 만들지 못하면 미중 갈등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최대 시장이지만 배터리 기술에 있어서는 변방국으로 꼽히던 유럽마저 '탈중국' 배터리 생산에 나설 정도다.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최근 중국 의존도가 높은 리튬·니켈 등을 쓰지 않는 나트륨배터리 개발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페테르 칼손 노스볼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아프리카·인도 등에 나트륨배터리가 달린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수백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