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정치판 휘젓는 벽안의 자칭 '천하잡놈'

2023-12-04 06:00

[박종렬 논설고문]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시인 박노해 ‘꼬막’)

자칭 ‘천하 잡놈’이라는 인요한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64). 전남 순천(順天) 출신인 그는 2023년 10월 23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발탁돼 한 달 넘게 거침없는 행보를 펼쳤다. 대한민국이 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정치판도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는 그가 ‘혁신’을 내걸고 동분서주했다. 전라도 특유의 욕을 걸판지게 하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하다며, ‘잡놈’은 ‘못되게 구는 사람’이 아니라 ‘박식하고 대인관계 좋은 친구’의 애칭(愛稱)이라고 유권해석('순천에선 욕을 해야 돼!' 인요한, 순천표 ‘욕(?) 강의’ SBS, @집사부일체 75회 2019년 6월 23일)한다. 
엘리트와 부자가 권력의 탈을 쓰고 있지만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돼 오로지 돈으로 자신을 비롯한 모든 가치를 결정한다. 탐욕과 부도덕을 당당하게 드러낸 정치사기꾼 모리배, 소시오패스 같은 마음과 몸가짐이 매우 천박한 통칭 ‘잡(雜)놈’들이 위선(僞善)을 떨며 설치는 한국 정치판에서 스스로 잡놈임을 당당히 고백(?)하는 그가 오히려 솔찬히 솔직해 보인다.
잡놈에게도 서열이 있어 서해에서 ‘유월 사리’ 때 잡히는 새우는 새하얗고 깨끗해서 ‘육젓’은 새우젓 가운데 최고로 친다. 하지만 ‘오월 사리’ 때 잡히는 새우는 밴댕이 꼴뚜기 새끼 등 온갖 잡것이 뒤섞여 새우젓 취급을 받지 못한다. ‘사람 중에도 못된 짓만 하며 지저분하게 구는 불한당(不汗黨)’을 오월 사리 때 새우 같다고 해서 ‘오사리잡놈’이라 부른다. 세계 선진국들은 5차산업 혁명에 대비해 새로 판을 짜는 국가전략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비전도, 미래 전략도 없는 시정잡배보다 못한 그야말로 ‘오사리잡놈’ 같은 정치사기꾼들의 정쟁이 끝이 없다. 정치판은 상식은 물론 시비선악(是非善惡)마저 헷갈리게 하는 난장판이 됐다. 그야말로 우주가 혼란스러워 자연이 무질서하자 인간이 미쳐 날뛰는 천하대란(天下大亂) 시대다.

물론 희망은 있다. 난극당치(亂極當治)라고, ‘혼란이 극에 달하면 새로운 질서’가 오는 법. 빈부 양극화와 보수-진보 간 이념논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시인의 말처럼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처럼 대청소할 때가 과연 다가올 것인가. 저항시인 이육사의 광야(曠野)에 등장하는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처럼 ‘초인’이 대망(待望) 되는 시대다. 그렇기에 집권여당을 ‘조사분(?)’ 인요한 혁신위원장 행보가 관심을 끌었다.
그가 재능과 도량을 아울러 이르는 기국(器局)이 큰 빼어난 인물인지 아직 평가가 이르다. 하지만 위원장 취임 이래 ‘붕정만리(鵬程萬里)’까지는 아니지만 ’낮도깨비’처럼 제주에 번쩍, 대구·부산에 번쩍 신출귀몰(神出鬼沒), 전국을 휘젓고 다닌 190㎝ 거구(巨軀)인 ‘한국판 몬스터(怪物)’의 광폭 행보가 화제가 되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 사랑,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펴내

인요한 위원장은 미국과 대한민국의 이중 국적자다. 1959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예수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전남 순천에서 보냈다.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2006년)이란 수필집 제목처럼 그의 순천 사랑은 병적(?)이다. 미국에서 4년 살고 난 뒤 은근히 미국이 마음에 들어 아예 이민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순천이 그리워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그는 인터뷰 때마다 개구일성(開口一聲)으로 ‘순천이 우주(宇宙)의 중심’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지구의 중심’이라는 중국(中心之國) 차원의 ‘글로벌’을 뛰어넘어 ‘메타버스(Metaverse)시대’에 걸맞게 ‘유니버셜’로 사고의 축(軸)을 우주 공간으로 확대한다. 천하를 거머쥐려는 대장부의 웅대한 포부를 뜻하는 ‘대붕도남(大鵬圖南)’(<장자> 소요유편), 즉 대업(大業)의 웅지(雄志)를 품은 야심가(野心家)가 아니면 입에 올릴 수 없는 천기누설(天機漏洩)이다.
구한말 임오군란 후 낙백시절 흥선대원군이 호남을 유람하다 너른 순천 벌을 보며 땅이 기름지고 풍성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 ‘지불여순천(地不如順天)’이라 평했는데 그는 ‘지구상에 순천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허세를 담은 재해석으로 풍(?)을 떤다. 순천(順天) 지명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며 천하를 논하는 그는 2016년 6월 16일에는 고향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 명예 홍보대사 1호를 맡았다. 그는 그동안 퇴직하는 날 바로 고향 순천으로 돌아간다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조렸다.
호남표준말(‘순천이 우주의 중심’이라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고)을 포함해 8개 국어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구사하는 ‘파란 눈의 토종 한국인’ 인 위원장. 그의 입에선 이제는 전라도 사람도 기억이 희미한 찰진 ‘호남 사투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말이 막히거나 곤란한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감픈 놈’ ‘허벌나게’ ‘거시기’ 등 걸쭉한 사투리를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는 레토릭으로 활용한다.

총선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벽안의 한국인

어린 시절 유난히 큰 두상(頭相) 때문에 ‘앞뒤 꼭지 3천 리, 왔다 갔다 6천 리, 돌아가면 9천 리’라는 놀림을 받으며 동네방네 쇳덩어리는 물론 염소 쇠 목줄까지 엿 바꿔 먹어 이빨까지 다 망가졌다는 개구쟁이 소년 인요한, 아명은 인쨔니.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처럼 어린 시절 야생마(野生馬)처럼 자랐고 ‘엿장수’가 꿈이었던 그가 집권여당을 혁신한다며 ‘변화. 통합. 희생. 놀라운 미래’라는 구호를 내걸고 정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정치판을 휘저었다.
총선 출마나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세평에 올랐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혁신위원장으로 발탁돼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에게 ‘혁신위원회 구성·활동 범위·기한 등 전권을 부여’받아 활동을 시작한 뒤 각종 혁신안을 제시했다. 1호 안건은 ‘당내 통합과 화합을 위한 대사면’이었고 이어 11월 3일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 및 험지 출마’ 등이 담긴 2호 안을 발표했다. 당대표를 포함한 이른바 ‘윤핵관’들에게 불출마 선언 혹은 험지 출마를 권고했으며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 불체포특권 포기, 세비 박탈, 하위 비율 20% 현역 컷오프 등도 제안했다.
취임 일성으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서 따온 혁신을 강조한 그는 ‘얼굴 자체가 다른 것이 바로 변화의 상징’이라며 “제가 원래 의사로, 당에 필요한 쓴 약을 지을 것”이라며 결기를 드러냈다.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영남 중진 물갈이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에 한 현역 의원이 “대구·경북 시·도민에게 깊은 영혼의 상처를 줬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낙동강 하류는 6·25 때 우리를 지킨 곳이다. 이후 많은 대통령이 거기에서 나왔다. 좀 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농담도 못합니까”라며 물러섰다. '낙동강 하류'라고 해서 상류(TK)도 아닌 하류(이른바 낙동강 벨트 지역)를 지칭한다는 그의 히트 앤드 런, 즉 ‘치고 빠지는 식’ 전술은 노련한 정치인들의 언론플레이를 뺨치게 한다. 말실수였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해프닝으로 치부되었다. 만약 다른 정치인 같았으면 구설이 무성할 설화(舌禍)일 텐데 애교로 넘어간 것이다.
‘국민의힘’은 100석 넘는 의석을 갖고 있지만 수도권 의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른바 영남 지역 중진 현역 의원들이 수도권에 출마해 야당 독식을 견제해야 한다는 제안에 장제원·김기현 등 몇몇 의원들이 오히려 지역구 사수 의지를 드러냈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시한을 정해 중진·친윤 의원들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험지 출마 요구'를 두고 기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기현 대표는 '급발진'이라는 표현으로 유감을 드러냈다. 이른바 윤핵관으로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킹메이커 장제원 의원은 4000여 명을 동원한 지지모임에서 “알량한 정치 인생을 연장하려고 서울 가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죽겠습니다”라며 16년 동안 가꾸어 온 지역구 사수 의지를 공개 석상에서 강조했다. 11월 12일 부산 지역구 교회 간증에서 “우리가 뭐가 두렵겠나. 저는 그래서 눈치 안 보고 산다. 나는 내 할 말 하고 산다”며 반발했다.
인 위원장은 그동안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부터 이준석 전 대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을 차례로 만났다. 그의 이런 통합 행보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해 ‘혁신위 무용론’까지 제기되었다. 험지 출마를 종용받은 김기현 대표는 “총선은 ‘지도부 지휘’로 치르는 종합예술”이라며 혁신위의 속도 조절을 언급하자 용퇴론을 거둬들일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측에서 “소신껏 맡은 임무를 거침없이 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2023년 11월 15일.)는 일화를 소개하며 대통령의 뜻이 혁신위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중진·친윤 용퇴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혁신안에) 역행하는 사람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냥 우유를 마실래,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라는 입장”이라며 “저는, 안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경했다. 그는 권고 대상자들의 자발적 ‘결단’을 촉구한 데서 한발 나아가 압박 수위를 높이며 ‘12월 마지노선’을 제시했지만 중진들은 결단을 미루면서 당내에서는 현실화가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높아가고 있다.
인 위원장은 당 혁신안을 내놓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 “나는 민주당 의원들 입당에도 열려 있다”며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까지 공개적으로 만났다. 내년 22대 총선과 관련해 3일간 잠행 끝에 지난달 30일 공천관리위원장을 요구하는 배수진을 친 폭탄선언에 2시간 만에 김기현 대표는 거부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이미 토사구팽(兎死狗烹) 대상이 된 윤핵관들은 이중 플레이에 능소능대한 윤 대통령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라는 암수(暗手)에 말려들었다. ‘현타’에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김 대표는 ‘자신의 발탁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인 위원장 언급대로 이제 호랑이를 타고 달리고 있으니 내려도 죽고, 타고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 형국으로 ‘자신을 잡아먹을 호랑이를 키우는 꼴’이 된 셈이다. 혁신위 활동 종료 기간이 임박한 가운데 기성 정치판의 ‘틀을 깨고 판을 바꾸려는’ 혁신위와 당 지도부·중진 간 공천을 둘러싼 수 싸움의 귀추가 주목된다.

인요한, 그는 의사이면서 기독교 선교역사를 간증하는 최고 인기 강사다. 폭넓은 독서력을 바탕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적절하게 섞어 수백 명의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유머 감각도 갖췄다. 이는 그가 정치인으로서도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벽안(碧眼)의 호남 아들’로 “박정희, 근로자, 어머니가 남한을 일으킨 3대 힘”이라고 주장하고 “이 국가, 이 나라 잘 지켜야 합니다”라고 역설하는 등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애국심’을 자랑한다. 또 ‘정치판에 큰 인물이 없다’는 한탄 속에서 “한국 정치는 국가 성장 수준보다 너무 뒤처져 있다”며 “전라도 말로 어문짓거리(엉뚱한 일)만 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하는 등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종착점이 어디일지 지켜볼 일이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