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졌지만 잘 싸웠다"...한국 브랜드가치 높인 기업인들에게 박수를

2023-11-29 19:36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가 한국의 부산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최종 확정됐다. 지난 2년간 엑스포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한 국내 기업들은 부산 탈락에 좌절했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고, 다양한 국가들과의 스킨십 확대에 성공한 점은 성과로 꼽힌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재계 총수들은 막판까지 강행군을 펼치며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이들이 보여준 투혼의 리더십은 부산을 넘어 한국의 국가 경쟁력까지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결과 아쉽지만 한국 기업 인지, 네트워킹 강화에 기여"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 투표에서 부산은 총 165표 중 29표를 받아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재계에선 실망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전폭적인 지원을 다하며 한국 알리기에 전력을 다했다.

이날 발표에 재계 관계자는 "결과는 아쉽지만 이번 유치활동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한 차원 높이고, 한국의 '제2의 도시'인 부산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면서 "유치활동에서 얻은 노하우를 통해 다양한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네트워킹을 강화해 다음 스텝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도 부산 엑스포 유치전은 결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는 데 공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에서 "국민들의 단합된 유치 노력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며 "세계는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희망했고,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전 국가적 노력과 염원에도 부산엑스포 유치가 좌절된 것은 아쉽지만 준비 과정에서 정부, 경제계, 국민이 모두 '원팀'이 돼 열정과 노력을 보여줬다"며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에 교두보가 되고,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딩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과의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며 "경영계는 유치 활동에 전념한 값진 경험과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주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금융특구 길드홀에서 열린 런던금융특구 시장 주최 만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국가를 위한 일,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오너의 리더십, 유치전서도 빛났다

재계에 따르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내 기업인들은 지난해 6월부터 18개월간 175개국에서 3000여 명의 정상, 장관을 직접 만났다. 부산엑스포유치 공동위원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 기간 '1인 3역'을 하며 160여 개국을 찾아 800여 명의 고위급 인사를 만났다. 최 회장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동한 거리만 지구 17바퀴에 해당하는 70만㎞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최 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발로 뛰는 과정에서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발굴한 부수 효과가 상당하다는 게 SK 내부 평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해외 출장 때마다 각국 고위관계자들과 릴레이 접견을 하고, 부산 엑스포 유치를 호소했다. 지난 7월에는 남태평양 국가 피지, 통가, 사모아를 찾았고, 8월에는 독일, 10월에는 스웨덴, 영국, 11월 프랑스에 머물며 부산 지지를 당부했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영국 런던 택시 '블랙캡'을 '부산엑스포 택시'로 래핑해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런던아이, 피카딜리 광장 등 곳곳에서 부산을 홍보했다. 삼성 SDI, 삼성전기, 삼성엔지니어링 등 관계사 사장단도 직접 엑스포 교섭단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그룹 홍보단 최전선에서 마지막까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BIE 실사단 한국 방문 당시에는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등을 의전차로 지원해 지속가능한 도시로서 부산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 했다. 정 회장은 출장 내내 지친 임직원들에게 "국가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독려하기도 했다. 이날 파리에 남아 투표 결과까지 지켜본 정 회장은 결과가 발표된 뒤 직원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사업보고회와 임원인사 등 그룹 주요 일정도 조정하고 파리로 건너가 유치활동에 힘을 보탰다. 구 회장은 파리에서 열린 국경일 리셉션에서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태동한 부산은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 중심 도시이자 대표적인 문화와 관광의 도시"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공식 일정 외에도 일정을 쪼개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의 BIE 대표들을 만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런던, 파리를 오가는 일정을 함께하며 BIE 회원국의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 신 회장은 지난 6월에도 30개국 대사들을 부산에 초청해 부산 북항 일대와 엑스포 홍보관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기선 HD그룹 부회장 등도 해외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부산 엑스포 지지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