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의 복원을 꿈꾸며

2023-11-27 06:00

[안상준 교수]

 
수능이 끝났다. 낙엽 지는 거리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북풍이 불고, 옷깃을 여미는 시민의 손길은 애처롭다. 어느새 2023년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현 정부 출범 즈음에 시작한 ‘함께꿈’이 어느 정도 여물어 가는지 돌아본다.
 
대통령의 정치 외면
 
정치는 국민 삶을 살피는 행위다. 정치 행위의 결과물은 정책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분야의 정책은 국정 운영 기조에 맞게 설계되고 부처 간 혹은 이해당사자 간 조정을 거쳐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로 집행된다. 그런데 현 정부는 태생적이고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바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 그리고 대선에서 이겼을 때 ‘정치 초보 대통령’을 우려하며 정치 문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과 고언이 쏟아졌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변신하기 위한 조건으로 협치를 강조했고, 그것은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시작부터 지금껏 이를 무시하고 거부해왔다. 야당과 그 어떤 대화나 타협의 노력도 없었고, 결국 극한적인 대립만 남았다. 정부의 법률 제안은 야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야당의 법률은 대통령의 재의권에 막혔다. 급기야 대법원장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거치지 못하고 낙마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국정 책임자와 국회 입법권의 충돌은 민주 정부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정부는 왜곡된 형태로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합법적인 절차를 마련했는데, 바로 시행령 통치다.
여론은 극단적으로 갈렸고, 일선 공무원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사이에서 복지부동했다. 야당 탓하는 정부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 탓하는 야당 사이에서 책임정부는 사라지고, 문제나 사고가 터지면 일선 공무원이 책임지고 처벌받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형 사고는 언제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정도다.
정부의 무능과 미숙한 대응 사례는 차고 넘친다. 특히 국가전산망 마비로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주일째 장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서비스 먹통이 연달아 발생하지만 국회에서 “재난 상황은 아니다"는 행정안전부 차관의 답변은 카카오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 먹통이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대통령의 질타는 ‘늘공’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다.
세계 잼버리 대회는 준비 부족과 파행적 운영으로 전 세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진상 규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책임 공방으로 변질됐고, 파행 운영을 위기 대응으로 뻔뻔하게 치환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아마도 모두의 기억에서 이 사태가 희미해질 때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송 지하도 참사는 또 어떤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보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정부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변함없이 안위를 엿보는 공무원 세계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진상 규명에 나서는 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에 거친 물살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의 익사 사고 경위를 규명하려던 해병대 조사단장은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제동에 걸려 항명죄를 뒤집어쓰고 분투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서 천공의 역할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덫에 걸린 전 국방부 대변인도 그중 한 명이다. ‘바이든 날리면’ 듣기평가는 괘씸죄에 걸려 가짜뉴스를 발본색원하는 정책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진실을 누설하거나 바른말을 하면 뒷감당을 걱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알리기에 충분하다.
 
개혁 과제의 실종 위기

지금 국정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 여의도 정치와 무관하게 보인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정치를 외면하고, 전 정권과 야당 탓으로 돌리면서 정치 혐오를 유발하는 형국이다. 그 결과, 3대 개혁 과제가 무산될 전망이다. 법률의 제·개정으로 개혁 과제를 실현할 수 있건만 그 단계로 나아가기도 전에 이미 공론화 단계에서 주저앉는 모양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근무제 도입이었다. 이른바 ‘9 to 6’의 일일 8시간 노동에 기초한 주당 52시간 노동이라는 골격을 파괴하고, 기업의 입장을 한껏 반영하여 조건과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일견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노동문화는 결코 이런 합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 OECD 회원국 중 장시간 노동 톱3에 속하는 한국의 기업들이 52시간 노동 내에서 이 제도를 수용할 리는 없다. 그래서 주당 최장 69시간까지 늘어나는 문제점을 지적하자 고용노동부는 혼비백산에 빠져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흐지부지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도 장관은 머쓱한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금개혁의 요체는 내는 보험료만큼 노후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노후 삶과 정부의 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지 않은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기금의 고갈만 부각해 국민의 노후 삶에 대한 우려를 자극할 뿐 실효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건전재정 타령만 하는 정부의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내용과 방법을 떠나 정권을 걸고 연금개혁을 이뤄낸 마크롱의 결단이 대단해 보이고 부러울 지경이다.
교육개혁은 애초부터 지향점이 없었다. 개혁이라는 허명으로 결국 수능의 비중을 높였고 특목고의 부활을 달성했고 고교학점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언급이 교육계의 모든 사안을 뒤덮어버렸다.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는 취지는 2024 수능으로 실현될 것인가? 어림도 없다! 겉으로는 수험생을 죽이는 ‘킬러문항’이 사라진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킬러문항을 없앤 ‘불수능’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불태우는 중이다. 수능이 고교과정을 짓누르는 힘은 더 커졌고, 사교육 시장은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어쩌면 깊은 생각 없이 툭 던진 대통령의 한마디가 50만 수험생의 진로를 뒤흔든 사건이 아닐까 싶다.
교육은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청소년 자살률 급등, 파국적인 초저출산율, 부동산 가격 상승, 사교육비 상승, 노후 자금의 결핍,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승자 독식 사회의 진화 등 공교육의 부실과 사교육의 창궐로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은 너무도 크고 심각하다.
 
무책임한 정책의 부작용 
 
현 정부 정책들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도처에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기후위기는 기후 재앙으로 심화했고,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탄소중립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대표적 정책으로 일회용품 규제를 내놓았다. 종이컵을 퇴출하고,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고, 가능하면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방향이었다.
그에 따라 정부는 식당과 카페에 종이빨대 사용을 권장하고 플라스틱 재료 퇴출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전면적인 제도 시행 보름 전 환경부는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고, 플라스틱 재질 규제를 포기했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무례하고 폭력적인 번복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정책을 믿고 다량의 종이빨대를 준비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에 빠졌다. 이는 정부를 믿으면 망한다는 메시지를 낳았고,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의 협력자가 아닌 그린워싱의 첨병임을 국제사회에 알린 ‘정부재해’라 칭해야 할 정도다.
비전도 없고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는 정부는 안타깝게도 비겁한 모습마저 보였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연적이고 국민적 기대가 높은 사안이다. 의료 시설의 부족은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중대한 사유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대구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학생의 모습을 직접 지켜봐야 했다. 그날 밤 중소도시의 삶에 드리우는 두려움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요즘도 서울행 KTX이음 열차에서는 서울의 대형 병원을 방문하는 부모의 안위를 묻는 자녀들의 통화 소리가 예사로이 들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런저런 실없는 핑계를 대면서 증원 규모를 빠뜨린 채 알맹이 없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거나 실제적인 증원 규모와 증원 시기 그리고 증원 방식에 관한 발표를 연기하고 있다. 그 연유가 사뭇 궁금하다. 의사협회는 이번에도 파업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 그렇다면 대통령은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내릴까? 의사협회와 검사정권, 과연 누가 더 힘이 셀까?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정권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런 의심을 입증이라도 하듯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 현실화율 계획 발표를 돌연 연기하고 현행을 유지하기로 했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부동산 자산 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은 종합부동산세와 공시지가의 현실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부자에게 이로운 감세로 이미 무력해졌다. 시세 대비 공시가의 낮은 책정은 모두에게 좋을 것 같지만 부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다.
유예 선언은 명백히 총선 전략의 일부로 보인다. 세수가 59조원 부족하여 한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꾸는 중에도 내년에도 변함없이 부자 감세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아닌가. 그 유탄은 서민이 맞고, 전국의 학생이 맞고, 지방공무원이 맞는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와 폐지, 교부금의 감소에 따른 교육 활동 프로그램의 축소와 중지 그리고 지방정부 교부금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공무원의 수당 삭감으로 드러나는 중이다.
 
정치의 복원을 바라며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또는 전국을 돌며 반정부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현 정부를 옹호하는 맞불시위도 만만치 않다. 상식과 이성을 견지하고 꿋꿋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치가 실종된 사회에서 우리 국민은 각자도생의 이전투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집권 여당과 진보 좌파의 누명을 쓰고 매도당하는 제1야당은 기득권 거대 정당의 이득을 누리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심리적 내전’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달아 ‘정서적 분단’을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비전, 전략,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정치가 복원되길 ‘함께 꿈’꾸는 밤이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