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하이부동산] 대형건설사 자존심 건 '하이엔드' 경쟁, 지방까지 확대…이젠 '하이퍼엔드'도

2023-11-14 06:00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지만, 국내 아파트에 브랜드 이름이 붙은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0년 DL이앤씨 e편한세상과 삼성물산 래미안이 국내 건설사 최초로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크고 작은 건설사들까지 브랜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브랜드가 붙었느냐에 따라 같은 지역 내에서도 가격 상승여력이 달라지는 등 실거래가와 향후 투자가치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대 건설사가 아니면 도전장도 내밀기 힘든 서울 주요 지역 도시정비사업장에서는 일반 브랜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대형사를 중심으로 한 '하이엔드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진 모습이다. 강남3구와 한강변 노른자 지역에는 이미 대형사들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세워 깃발을 꽂고 있고, 강북에서도 대규모 핵심단지를 중심으로 하이엔드 브랜드로 수주전을 펼치는 분위기다. 
디에이치·아크로·오티에르…"강남3구·한강변 랜드마크로"
과천 푸르지오써밋 단지 모습 [사진=대우건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10대 건설사 중 하이엔드 브랜드가 별도로 있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6개사 모두 자사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단지를 늘려나가는 분위기다. 고급 자재와 디자인, 설계 등에서 기존 아파트보다 차별화된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목적이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THE H)'가 적용된 단지는 총 5곳으로, 모두 강남에 있다.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라클라스를 비롯해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디에이치 퍼스티어아이파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디에이치 자이 개포다. 이밖에 앞으로 디에이치가 적용될 곳은 한남3구역, 방배5구역, 반포1구역, 노량진4구역, 흑석9구역 등이 있다. 

DL이앤씨의 아크로(ACRO)는 서울 내 주요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반포 대장주인 아크로리버파크와 성수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아크로힐스 논현, 영등포 아크로 타워스퀘어, 잠원동 아크로리버뷰신반포, 흑석 아크로리버하임 등이 있다. 현재 아크로 여의도 더원도 분양 중이다. 이밖에 방배 삼익(아크로 리츠카운티), 서초 신동아(아크로 드 서초), 삼성동 대림(아크로 드 청담) 등도 분양이 예정돼 있다. 

대우건설은 용산과 서초, 대치, 반포와 과천에서 2곳(과천푸르지오써밋·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 총 6곳의 푸르지오써밋을 준공했다. 또 부산 최초 푸르지오써밋인 '더 비치 푸르지오 써밋'은 내달 준공을 앞두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나만의 순간'을 핵심가치로 하는 오티에르(HAUTERRE)를 2019년 초반부터 준비해 지난해 7월 출시했다. 올해 1월 방배신동아 재건축(오티에르 방배)을 수주하며 오티에르를 처음 선보이게 됐다. 인근 신반포21차, 신반포18차 등도 오티에르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수주전에서도 현대건설 디에이치에 맞서 오티에르를 제안했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운데)가 있는 성수동 고급 단지 전경 [사진=DL이앤씨]

롯데건설 르엘(LE-EL)은 르엘 대치(대치2지구 재건축), 반포 르엘(반포 우성 재건축), 반포 르엘 2차(신반포14차 재건축), 신반포 르엘(신반포13차 재건축) 등이 입주를 마친 상태다. 공사 중인 르엘 단지로는 청담 르엘(청담삼익 재건축)과 잠실 르엘(미성·크로바 재건축), 르엘 이촌(이촌 현대아파트 재건축)이 있다. 

SK에코플랜트 '드파인'은 부산 수영구 광안2구역을 시작으로 서울에서는 동작구 노량진2구역, 광진구 광장삼성1차 소규모재건축, 이촌동 우성아파트 리모델링 등에 적용 예정이다. 부산 해운대구에도 기존 SK뷰로 시공 중이던 '센텀아스트룸SK뷰'에 설계변경 등이 반영되며 드파인을 적용하기로 바꿨다. 

건설사마다 내부 기준에 따라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하기도 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저희는 가장 큰 기준 3가지가 있다. 강남3구, 서울 한강변, 그리고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롯데그룹 주요 사업지들과 브랜드타운을 이룰 만한 서울의 요지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이앤씨 측도 "본사 브랜드 심의위원회를 통해 오티에르를 달 수 있는지, 없는지 엄격하게 심사를 거친다. 단지 규모나 입지 중심으로 검토한다"며 "지역을 한정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강남처럼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곳, 한강대교를 넘어올 때 눈에 잘 띄는 위치 등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노른자 수주전엔 필승 요소…일반 브랜드로는 시공권 '위태위태'
여의도 한양아파트 '오티에르' 적용 투시도 [사진=포스코이앤씨]

어느덧 하이엔드 브랜드는 서울에서도 '노른자'로 꼽히는 지역의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는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당초 현대건설처럼 강남3구 위주로 하이엔드 브랜드 단지를 세우려는 분위기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각 정비사업 조합에서도 일찌감치 하이엔드 브랜드를 시공사 선정 요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다. 동작구 한 재개발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1~2년 전부터 우리는 하이엔드 브랜드 아니면 안 받는다고 건설사들에게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다녔다"며 "주변 구역에 전부 하이엔드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만 일반 브랜드 아파트를 들일 수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2년 전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수주했던 DL이앤씨는 'e편한세상' 대신 '아크로'를 붙여달라는 조합의 요구를 거부한 이후 시공계약을 해지당했다. 이후 신당8구역은 결국 포스코이앤씨의 오티에르를 약속받았다. 비슷한 시기 롯데건설 역시 흑석9구역에서 조합원들의 르엘 요구를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계약해지 위기에 처하자 결국 르엘을 약속하며 시공권을 지켰다. 

총 9000가구가 넘는 강북 재개발 최대어 '노량진뉴타운'은 대형사 하이엔드 브랜드 각축전으로 평가된다. 향후 하이엔드 브랜드만 모인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2구역은 드파인, 3구역 오티에르, 4구역 디에이치 씨엘스타, 5구역 써밋 더 트레시아, 7구역 드파인, 8구역 아크로 리버스카이 등이 적용된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1구역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원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를 앞세워 강북 재개발 대어인 한남3구과 흑석9구역 등을 수주했다. 대우건설은 흑석11구역에 푸르지오 써밋을 적용, '써밋 더힐(SUMMIT the hill)'을 제안해 시공권을 확보했다. DL이앤씨는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에 강북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했다. DL이앤씨는 당초엔 별도 브랜드 도입을 제안했지만 조합이 반발해 '아크로 드레브 372'를 붙였다. 
서울 수도권 넘어 지방까지 번지는 하이엔드 바람…희소성 떨어져 '하이퍼엔드' 제안도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아너힐즈 스카이라운지 투시도 [사진=현대건설]

강남3구, 한강변 등 서울 핵심지역 위주로 적용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지방 곳곳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주로 지방 핵심 지역 대규모 단지 위주다. 

DL이앤씨는 부산, 광주, 대구 등에 아크로 단지를 활발히 확대해 가고 있다. 부산에는 해운대구 우동에 아크로 원하이드(삼호가든 재건축, 1481가구), 수영구 망미동에 아크로 광안(광안A구역 재개발, 2790가구), 부산진구 범전동에 아크로 라로체(촉진3구역, 3554가구) 등을 적용했다. 중동5구역에는 '아크로 해운대'를 선보이기로 했다. 대구에는 1901가구 규모 수성구 수성1지구 재개발 사업에서 아크로 르비아체를 제안해 수주했다. 광주에는 광산구 신가동에 4738가구 규모 아크로 트라몬트를 약속했다. 

현대건설도 부산, 대전, 광주 등지에 디에이치를 적용했다. 대우건설도 부산 최초 써밋인 '더 비치 푸르지오 써밋' 준공을 앞두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1호 드파인'을 지방에서 선보이게 됐다. 부산 광안2구역 일대를 재개발하는 사업에서 '드파인 광안'을 적용한다. 

다만 하이엔드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공권을 수주하기 위해 자사 기준에 못 미쳐도 하이엔드 브랜드 사용 약속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고급 브랜드는 무조건 강남3구로만 제한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한정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여기저기 다 적용하면 하이엔드 브랜드만의 차별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서울 한 재건축사업장 관계자는 "하도 모든 건설사들이 하이엔드를 남발하다보니 그중에서도 더 상위권 건설사 브랜드를 찾게 된다"며 "조합원 입장에선 어설프게 고급화해 공사비를 지나치게 높이면 분담금이 늘어 손해볼 수 있어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치열한 하이엔드 경쟁으로 하이엔드보다 더 고급화한 '하이퍼엔드' 경쟁으로까지 치달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현대건설은 여의도 한양 재건축에서 단지 최고급화를 약속하며 하이퍼엔드 브랜드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앞서 현대건설이 청담동에 지은 'PH129', '에테르노 청담' 등 초고급 단지들이 하이퍼엔드 주거단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