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낙관 전망 불구…美 경제 4분기 본격 둔화하나

2023-11-05 15:56
3일 발표된 10월 비농업 취업자 수 15만명으로 전월 대비 반토막
4분기 GDP 성장률 전망도 1.2%로 반토막
美 국채 금리도 하락하며 성장 둔화 전망 반영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EPA·연합뉴스]

"미국민이 소비하는 만큼 미국 경제는 성장한다"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9%라는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이후 백악관은 이 같은 성명을 내고 자신감에 가득 찬 경제 전망을 제시했다. 미국 경제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지출이 탄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미국 경제 역시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새 향후 경제 전망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지난 3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는 전월 대비 15만명 증가를 기록했다. 이는 로이터 예상치(18만명 증가)를 밑돈 동시에 전월(29만7000명 증가)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같은 시각 발표된 10월 평균 시급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4.1%로, 2021년 6월 이후 2년 4개월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번 취업자 수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 약 3만명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올해 월별 취업자 수 증가분 평균치인 25만8000명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또한 8, 9월 취업자 수는 총 10만1000명이 하향 조정됐고, 실업률은 3.9%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해 2022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고용 상황이 악화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은 미국 고용시장은 2021년부터는 꾸준히 회복세를 보인 가운데 올해 들어서도 취업자 수와 임금이 꾸준히 증가하며 미국 경제의 순항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작년부터 광폭 금리 인상에 나선 여파에 고금리 및 고물가의 압박이 축적된 데다 10월부터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여파까지 겹치면서 고용시장이 마침내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용 시장 및 임금 둔화는 곧 가계 소득 및 소비의 둔화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미국 경제의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보험사 네이션와이드의 케이시 보스찬치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월이 미국 경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고용 수요의 냉각과 소득 성장세의 둔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 지출이 상당히 급격하게 둔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실제로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의 미국 GDP 예측 모델인 GDP나우에 따르면 1일 기준 미국 4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는 1.2%를 기록했다. 지난달 27일 기준 전망치가 2.3%였던 것에서 불과 며칠 새 반토막이 난 것이다. 애틀랜타 연은은 4분기 실질 개인 소비 지출과 민간 총 투자 성장세가 더욱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성장 전망치가 하향됐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미국 기업들의 4분기 실적 전망치도 하향 조정되기 시작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500 상장 기업들의 4분기 주당 순이익(EPS) 평균 전망치는 57.86달러로, 한 달 전의 55.61달러에 비해 3.9%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2분기 이후 최대 감소폭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가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성장 둔화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의도하고 있기도 하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2%로 끌어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결국 성장률이 낮아져야 인플레이션도 내려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2회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물가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고용 시장 여건이 일부 둔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향후 미 정책 당국자들은 고물가, 고금리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성장이 급격히 둔화하지 않는 연착륙 실현이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한편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 전망은 금융 시장에도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장중 5%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3일 장에서 4.57%까지 내려왔다. 지난주 미 재무부가 발표한 국채 발행 계획 규모가 예상보다 낮았던 데다, 고용지표 발표 이후 성장 둔화 및 연준의 긴축 종료 전망이 힘을 받으면서 채권 시장이 강세(채권 금리 하락)로 돌아선 상태이다.

인베스코의 수석 글로벌 시장 전략가 크리스티나 후퍼는 "우리는 현재 상당한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 추세 속에 있다"며 "경제는 냉각되고 있고, 연준은 재차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