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끝나지 않은 '잊혀진 전쟁'
2023-10-30 06:00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또 다른 전쟁에 말려들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졌다. 전 세계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이·팔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생각이 가장 복잡해진 사람 중 한 명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행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줄어들까 분주히 움직이며 전 세계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로 러·우 전쟁이 2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이·팔 전쟁 발발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도가 예전만큼 못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전쟁이 잠잠해진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여전히 혈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매일 사상자가 평균 수백명씩 발생하고 있다.
휴전국인 한국이 강 건너 불 보듯 할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 시선이 이·팔 전쟁에 집중되고 있지만 나날이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의 위험은 하마스 등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력 수준으로 보자면 이미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위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해 작년에만 2조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러시아, 하마스 측에 북한이 무기를 공급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쯤 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죽음의 상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뿐만 아니라 북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강경 일변도 기조에서 다소 벗어나 대화 채널을 마련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사실 냉전이든 열전이든 간에 대결을 하면서도 상대방과 대화 채널을 마련해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 역시 주요 경쟁 상대로 규정한 중국과 각종 설전과 제재를 주고받으면서도 대화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실사구시적 자세로 중국과 협상에 임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독재자'로 칭하며 양국 간에 설전이 오갔고 최근에는 반도체와 광물 관련 제재를 주고받았지만 고위급 회담이 꾸준히 이어진 가운데 다음 달 있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현재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조차도 교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 역시 북한과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던 바와 같이 북한 측 태도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대화를 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의 예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일단 대화의 길을 터 놓는 것은 최소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고 향후 관계 개선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놓는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미국 방문 기간 중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남침을 막아냈고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인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와 함께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동시에 힘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