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中 리커창 전 총리 별세…"인민의 좋은 총리 떠났다"
2023-10-27 16:03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리더십…중국 G2 반열에 올려
절대권력에도 쓴소리 마다않는 '진짜 총리'
절대권력에도 쓴소리 마다않는 '진짜 총리'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총리직을 내려놓으면서도 중국 최고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며 끝까지 민생을 보살폈던 '인민의 좋은 총리' 리커창 전 총리가 27일 6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는 “상하이에서 휴식 중이던 리커창 전 총리가 26일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켰고, 응급조치에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27일 0시 10분(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며 “부고를 곧 낼 것”이라고 밝혔다. 리 전 총리의 정확한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리더십…'2인자'로서 중국 G2 반열에 올려
1955년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향후 후진타오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안후이성 출신 정치세력인 ‘안후이방(安徽幇)’의 대표적 인물이 된다.
어려서부터 소문난 수재였던 그는 문화대혁명으로 폐지됐던 가오카오(대학 입학 시험)가 10년 만에 부활하던 1977년 중국 최고 명문대 베이징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당시 가오카오 합격률은 4.7%에 불과했다. 리더십도 남달랐다. 학부 시절부터 학생회 회장을 연임했고 재학 중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를 맡으며 이미 당 고위 간부들이 참여하는 공청단 행사를 주관했다. 1983년에는 공청단 서기국에 들어갔고, 1992년 공청단 제1서기에 등극한다. 37세에 장관급 인사가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소문난 수재였던 그는 문화대혁명으로 폐지됐던 가오카오(대학 입학 시험)가 10년 만에 부활하던 1977년 중국 최고 명문대 베이징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당시 가오카오 합격률은 4.7%에 불과했다. 리더십도 남달랐다. 학부 시절부터 학생회 회장을 연임했고 재학 중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를 맡으며 이미 당 고위 간부들이 참여하는 공청단 행사를 주관했다. 1983년에는 공청단 서기국에 들어갔고, 1992년 공청단 제1서기에 등극한다. 37세에 장관급 인사가 된 것이다.
1998년 허난성 당위원회 부서기로 발탁되며 중앙위원회에 입성했고, 이듬해 44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성장으로 임명된다. 리 전 총리는 낙후한 농촌에 불과했던 허난성을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시키며 차세대 리더로 두각을 나타낸다. 2004년에는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로 일하면서 지역 경제성장률을 13년 만의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
이후 2007년 10월 17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꿰차며 '최고지도자' 물망에 오른다. 당시 시진핑 주석도 서열 6위로 상무위원에 선출됐는데, 서열 7위였던 리 전 총리를 간발의 차로 앞섰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주석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나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치세력)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권력에도 쓴소리 마다않는 '진짜 총리'
리 전 총리는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국가 경제 발전과 민생을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020년 시 주석이 절대빈곤을 없앴고,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했다는 것을 성과로 강조할 당시에도 리 전 총리는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에 불과하다”며 빈부격차와 소득불평등에 대해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에서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을 향해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언급하며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절대권력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민생을 챙겼던 리 전 총리의 죽음에 중국은 슬픔에 잠겼다. 리 전 총리 사망 보도가 나온 뒤 2시간여 만에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선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11억회 넘게 열람됐고, 관련 글은 45만건 이상 공유됐다.
퇴임 6개월 만인 지난달, 리 전 총리가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을 공개적으로 방문했을 당시에도 중국 국민들은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휴대전화로 그의 모습을 담았다. 퇴임 후에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지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인민의 좋은 총리였다”, “항상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고, 진심으로 인민을 위하는 영원한 총리다”, “좋은 사람은 왜 이렇게 빨리 떠나냐”, “이제 편히 쉬시라”며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에서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을 향해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언급하며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절대권력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민생을 챙겼던 리 전 총리의 죽음에 중국은 슬픔에 잠겼다. 리 전 총리 사망 보도가 나온 뒤 2시간여 만에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선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11억회 넘게 열람됐고, 관련 글은 45만건 이상 공유됐다.
퇴임 6개월 만인 지난달, 리 전 총리가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을 공개적으로 방문했을 당시에도 중국 국민들은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휴대전화로 그의 모습을 담았다. 퇴임 후에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지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인민의 좋은 총리였다”, “항상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고, 진심으로 인민을 위하는 영원한 총리다”, “좋은 사람은 왜 이렇게 빨리 떠나냐”, “이제 편히 쉬시라”며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