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지 않는 이태원의 눈물] 행사장서 '우측통행'..."'빨리' 보다 안전이 더 중요"
2023-10-26 13:38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작년 이태원 참사가 생각이 나요. 빨리 가는 것보단 천천히,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음악 축제 행사를 즐기러 온 30대 남성)
2022년 10월 31일 '최악의 핼러윈데이'로 기억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다중밀집 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본지가 각종 행사가 많이 열리는 10월 페스티벌, 거리 행사 등을 돌아본 결과 시민들은 '빨리'보다는 '안전하게'가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핼러윈데이를 약 열흘 앞둔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Grand Mint Festival)'이 한창이었다. 음악 축제인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엔 권진아, 정준영부터 적재, 더클래식, 윤하까지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에 관객 3만명이 몰려들었다. 이날 행사 스태프로 참여한 20대 여성 한모씨는 "이렇게 인파가 많이 몰리는 행사를 할 때면 작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까봐 시민들 안전이 가장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뒤늦게 스탠딩존을 찾았다 들어가지 못하게 된 한 30대 남성 김모씨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이렇게 통제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처음에 스탠딩존을 보고 너무 작길래 작년 이태원 참사가 떠오르면서 '여기서 누구 한명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스태프들이 미리 관객들을 잘 통제해주는 것 같아서 이태원 참사 이후 1년 동안 의식이 많이 변하긴 했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스탠딩존 안에서도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객들은 옆 관객과 너무 붙지 않도록 간격을 유지하고 서서 공연을 감상했다. 몇 년째 공연과 페스티벌을 즐기러 다니고 있다는 스탠딩존에 있던 30대 여성 박모씨는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다니다보면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앞 사람을 밀거나 밀착해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무리하게 밀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혹여나 그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 다른 관객들이 '사람 다쳐요. 그만 미세요'라며 말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한강달빛야시장'에서도 질서를 지켜 이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쪽으로 플리마켓과 푸드트럭이 마련됐는데 시민들은 "우측통행 해달라"는 스태프의 요청에 따라 우측통행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푸드트럭 앞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시민들도 스태프의 통제에 따라 통행로를 침범하지 않고 푸드트럭 뒤쪽으로 줄을 섰다.
한 30대 남성은 "이태원 참사 이후 우측통행만 잘 했어도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며 "우측으로만 다니다보니 좌측에 있는 플리마켓이나 푸드트럭을 가기 위해 한바퀴 돌아가야 하지만 안전을 위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시민들의 질서 의식이 몇 년 뒤에도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