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양대노총, 결국 '회계 공시' 동참…조합원 이탈 우려에 백기

2023-10-25 17:48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까지 회계 공시에 동참하며 양대노총 모두 정부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상급 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산하 조직도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연좌제' 방식아 큰 압박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양대 노총을 움직이게 만든 셈이다. 

25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양대노총 모두 정부가 추진하는 노조회계 공시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전날 중앙집행위를 마친 뒤 회계를 공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성명을 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노조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했다. 고용부는 회계 공시 의무를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에만 부여했다. 하지만 상급 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산하 조직도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채택해 양대 노총을 압박했다.

양대노총은 "노조 탄압"이라며 크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지난 23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 제외 등 조합원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회계를 공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도 24일 "민주노총 방침과 결정에 따라 투쟁해온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면서 회계를 공시하기로 했다.

이는 곧 노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양대 노총을 움직인 가장 큰 고려 요소로 분석된다. 사실상 양대노총 등 총연맹이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복수노조 사업장일 경우 조합원들은 결국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 노조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회계 공시 수용과 별개로 노조 통제를 위한 시행령 규탄 투쟁은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노총은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을 경우 산하조직도 세액공제 대상에서 배제하는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돌입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노조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세액공제를 하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다"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 위한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법률원에서 냉정하게 평가한 결과 헌법소원을 내고 위헌 판정을 받기 어렵다"며 "다른 부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양대노총의 회계 공시 동참에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노사 관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동개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양대노총 참여를 통해 노조의 투명한 회계 공시가 확산되면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계공시 동참으로 노조의 투쟁 의지가 한풀 꺽이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는 다음달 근로시간 개편을 위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상반기 내놓은 개편안이 진통을 겪은 만큼 노동계와의 대화를 통한 개편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고용부는 지난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시에 '사용자가 특정 주에 시간을 몬다면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주 69시간제' 논란에 직면하며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근로시간 개편에 대해 보완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고용부는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집단심층면접(FGI)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달 발표 예정이며 해당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보완방향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12일 열린 고용부 국정감사에서 "설문조사 결과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투명하게 설명하고 보완방향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대노총은 우선 정부가 다음 달 발표 예정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 보완안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난 3월 주69시간제 논란 이후로 별 논의가 없어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겠다"며 "개편안 내용이 나오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 역시 "고용부 안을 지켜보고 대응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