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치유농업으로 농업·농촌 새 길 모색해야

2023-10-18 05:00

유남영 정읍농협 조합장 [사진=아주경제 DB]

농업이 전통적인 농사 개념을 넘어 국민의 건강 회복·유지·증진 등 치유를 목적으로 다양한 농업·농촌 자원의 활용과 이와 관련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또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활용된다. 정부는 지난 2021년 3월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적으로 치유농업(Care Farming)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을 제정했다.
 
치유농업은 원예치유에서 시작됐다. 농촌진흥청은 1994년 꽃, 채소 등 원예작물의 치유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2013년에 치유농업 개념을 정립, 건강 증진 효과를 계속 검증해 왔다. 올해 8월에는 치유농업 활동이 성인 발달장애인의 손 기능, 일상생활 수행 능력 같은 신체기능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주말농장에서 씨 뿌리기, 꽃밭 가꾸기, 허브차 만들기 등의 활동을 통해 우울증이 60% 감소하고 총콜레스테롤과 체지방도 일부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28.1% 감소하고 인슐린 분비 기능은 47% 증가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정읍농협에서도 치유농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전라북도와 정읍시, 그리고 정읍농협이 치유농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농협이 치유농업의 거점 역할을 담당할 계획이다. 농작물을 이용한 치유와 동물을 이용한 치유를 병행하려고 한다. 우선 1500평 정도의 부지를 마련하고 치유농업 추진에 필요한 농가 교육장과 회의실을 마련했다. 직원들이 전북대학교에서 교육을 이수하고 치유농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치유농장을 견학하는 등 하나하나 준비해 가고 있다. 치유농업에 관심이 있는 관내 농가를 발굴해 서로 연결하고 숙박시설, 체험장, 이동버스 등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사업성을 높일 방침이다.
 
치유농업 교육을 이수한 직원들을 전문 치유농업사로 양성한다. 치유농업사는 농업·보건·상담·심리에 전문성을 갖추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실행하는 전문 인력이다. 치유농업을 농촌복지의 일환인 요양원이나 관광농업과 연계해 사업성이 지속적으로 담보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치유농업으로 가장 앞서있는 국가는 '케어팜'으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다. 작물 생산 중심의 전통적 농업으로는 더 이상 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자연경관, 환경보전, 휴식 등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케어팜은 농업을 통한 다양한 활동과 돌봄 서비스를 결합한 것이다. 케어팜의 주 수요층은 건강의 회복·유지·증진 등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치유농업은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을 위한 수단'이다. 농업·농촌이 먹거리 공급과 환경 보전이라는 전통적 역할과 함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다. 농업·농촌에서 치유적 도움을 얻고자 하는 도시민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채소와 꽃 등 식물뿐 아니라 동물과 곤충, 농촌환경과 문화, 음식 등이 모두 치유농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치유농업 서비스는 농업·농촌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로 이뤄진다.
 
그동안 농업·농촌의 자원을 활용하는 농촌관광농업, 경관농업, 농촌형 민박 사업 등 다양한 사업들을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하여 추진해 왔으나 농업인의 실질적인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치유농업센터'를 만들고 예산을 지원하는 등 치유농장을 정책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농협도 치유농업이 과거 사례들처럼 잠깐 관심을 끌다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경영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농업인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농협을 중심으로 관내 치유농장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등 장기적으로 사업성이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