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주현 산업硏 원장 "산업 대전환기, 미래 경쟁력 국가 차원서 고민해야"

2023-10-17 05:00
1985년 산업연 입사해, 38년간 정부 정책 제시
산업 대전환 시기, 체질 개선 통해 경쟁력 갖춰야
패권 경쟁·지정학적 갈등 심화... 소부장 전략 필요
R&D 예산 줄어도 중기 대상 소규모 사업 유지해야

주현 산업연구원(KIET) 원장이 16일 아주경제와 만나 산업 대전환 시기 우리나라의 대응과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근 많은 나라가 자국 내 전략산업을 키우기 위해 육성법을 만들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정책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시장경제에 맡겨졌던 산업 진흥 방안에 대한 정부 입김이 부활·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발생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 국가 간 패권 경쟁과 지정학적 갈등은 이러한 추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은 16일 아주경제와 만나 "산업정책이 부활하면서 관련 연구 수요가 증가하고 국책 연구기관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커지는 모습"이라며 "기업의 전략과 국제 정세 대응 방안을 세우는 민간 연구기관과 달리 국책 연구기관은 국가 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이해를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이하 산업연)은 1976년 설립된 국가정책 연구기관이다. 국내외 산업과 무역통상을 연계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이다. 민간 연구기관이 전무하던 시절 우리나라 경제 발전 초기 단계부터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 제시에 기여해 왔다. 최근에는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 대응하고 산업 대전환 시기에 필요한 우리나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주 원장은 1985년 산업연에 입사해 약 38년간 근무하며 중소벤처연구실장, 산업경제연구실장, 부원장 등을 거친 뒤 2021년 제2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오랜 기간 연구 분야에 몸담은 그는 산업 대전환 시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 원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지난해부터 우리 수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수출을 플러스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하반기 전망은 어떤가.

"하반기 들어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수입 감소가 더 커서 발생하는 불황형 흑자라는 점에서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다만 주요 수출 품목 동향을 보면 10월 이후 수출 실적 플러스 전환 가능성은 확실히 커졌다. 지난 1년간 실적 부진을 초래했던 반도체 수출이 개선되고 있으며 석유화학과 석유제품도 국제 유가 상승에 따라 단가가 올라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1.4%로 전망했다.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 대내외 악재로 1% 초반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어떻게 예상하는가.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복합적인 이유로 0.9%라는 낮은 수준을 보였다. 다만 실물 중심으로 개선 흐름이 지속되면 하반기에는 1% 중·후반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당초 우리가 예상했던 1% 중반대 수준은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9월 들어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실적을 보였으며 광공업생산도 개선되는 등 경기 변곡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 경기 하방 요인으로 인해 확연한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발 금리 상승 여파, 과도한 부채에 따른 국내 소비·투자 부진, 더딘 중국 경제 회복세, 국제 유가 오름세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도 유가 변동성을 키우는 등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져 경기 회복에 불안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장기화하면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단정할 수 없다. 분쟁 당사국들은 우리나라와 교역량이 아주 미미하지만 현지 교민이나 사업장 등이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처럼 이란이 팔레스타인 배후에 있다면 서방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또 중동 전반으로 분쟁이 확산하면 인접 국가 원유 수출에도 영향을 줘 국제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

특히 확전 시 국제 교류 등 우리 경제 전반에 활력을 줄일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대비 타격이 클 수 있다. 확전 여부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주현 산업연구원(KIET) 원장이 16일 아주경제와 만나 산업 대전환 시기 우리나라의 대응과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심화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 국제 정세가 향후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중 갈등은 일시적이거나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국은 정권이 몇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도 같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개방 노선을 채택해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된 이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개방을 유도한 것은 미국이지만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용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중 갈등은 향후 상당 기간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다만 과거 냉전시대 같은 완전히 이원화한 세계 질서가 재현될 것 같지는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세계 각국은 이미 충분히 다원화돼 있으며 국가별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리더 국가 중 하나로서 인류사적 대의명분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우리 이해를 고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대중국 수출이 줄면서 우리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일각에선 탈중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세계 산업 생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급망을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은 수출과 수입에서 5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세계 경제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과도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는 있다.

다만 탈중국이라는 표현은 과도하다.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도 경제 정책 방향은 탈동조화(디커플링)가 아닌 위험 완화(디리스킹)임을 공식화한 바 있다. 우리도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한 만큼 신흥시장 발굴 등 수출 다변화를 위한 대응도 필요하다. 대체할 수 있는 생산 입지와 수출 대상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거대한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갖춘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관심을 키워야 한다."

-이번 정부 들어 일본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과 협력하면서 우리나라가 챙길 수 있는 실익은 어떤 것이 있나.

"우리 첨단 산업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관련해 일본 의존도가 높다. 한·일 간 경제협력이나 관계 개선에 따라 이러한 핵심 소부장에 대한 공급망을 안정화할 수 있다. 과거 있었던 무역 분쟁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 된다. 다만 우리도 의존만 할 수는 없다. 경제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협력하더라도 소부장을 포기하면 안 된다. 일본은 '전략적 불가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자산을 갖춰야 한다. 다른 나라가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핵심 소부장에 대해 우리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기차, 자동차 등이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미국 IRA에 이어 최근 프랑스판 IRA가 발표되는 등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제조업에서 영향이 큰 자동차 산업에서 자국 내 미래 차 산업 기반 확보를 위해 보호주의 성격을 띤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 중 매년 65% 이상을 수출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정책에 따라 현지 생산을 늘리는 등 국내 생산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2000년대 초 현지 생산을 늘릴 때 우리 자동차 산업과 부품 산업 생산 위축을 우려한 바 있다. 이는 내수 중심이던 부품 산업을 현지 생산을 위한 수출 산업으로 강화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금 시점에서도 미래 차 관련 부품 전환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수출 품목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산업 지형에서 우리 산업과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광물에 대해 주요국이 전략 자산화를 하고 있다. 자원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어떤 대응책이 필요한가.

"공급망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가 필요한 품목군을 식별하고 핵심 광물 대체 수입처를 발굴하며, 직접 해외 광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특정 국가가 독점하고 있으면 비축 정책도 필요하다. 특히 공급망 블록화 추세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회원국 간 공급망 협정을 추구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광물안보 파트너십 등에 참여하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 우리도 다른 국가가 요구하는 소부장 제품군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줄였다. 이러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R&D 투자는 경제 규모 대비 세계 2위 수준으로 높지만 규모 대비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업 경쟁력이 안보와 직결된 오늘날 기술 혁신과 인재 양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예산 규모를 논하기 전에 기존 정책이 예산 투입 대비 성과를 내는지 점검하고 제도 경직성으로 인해 성과보다 행정 절차를 우선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미래 유망 기술처럼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연구자 인건비 형태로 인적 자본에 사용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효율화가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 규모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소·벤처기업 R&D 투자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소규모 R&D 사업은 종종 나눠 먹기식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소수 대기업 R&D만으론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의 소규모 R&D 투자는 중소·벤처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해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산업연 원장을 2년 이상 맡았는데 향후 산업연 방향성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산업 대전환 시대다. 디지털 전환, 그린 전환, 글로벌 공급망 변화 등 다양한 환경 변화에 더해 인구구조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우리 산업 구조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연은 2026년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그간 다양한 연구 수요에 부응해 왔으나 지금처럼 수요가 폭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산업정책 부활에 따라 우리 연구원은 국책연구원으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이다."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 박사
△대통령비서실 중소벤처비서관
△산업연구원 부원장
△통계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미국 UC버클리 방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