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수에즈운하에 쏠린 눈..."확전 땐 對유럽 해상물류 마비"

2023-10-13 05:00
업계 "상황 예의주시"...운임 낮은데 유가 급등하며 4분기 수익성 '빨간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확전 여부에 따라 대(對)유럽 해상물류가 완전히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아시아와 유럽의 해상무역을 책임지는 수에즈운하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로 전쟁의 불씨가 튄다면 국내 석유수급의 약 70%를 책임지는 중동 유조선 노선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해운업계의 4분기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운임지수가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요인이 발생해 선박 운영비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국적 해운사인 HMM, 팬오션, SM상선, 대한해운 등은 중동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확전 시 관련 노선에 대한 조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적 선박 중에서는 이스라엘에 직접 취항하는 선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해운업계는 중동을 지나는 국적 선박에 주의만 줬을 뿐 별도의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확산할 경우에는 대중동 해상무역은 물론 대유럽 해상무역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수시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해운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하마스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페르시아만을 가는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이 첫 번째 위험지역으로 떠오른다. 호르무즈해협은 중동산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국내 유조선이 지나는 길목으로 중동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위험도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국적 선박을 나포해 국내 해운사들이 사우디 서쪽에 위치한 홍해를 통해 원유를 들여온 사례가 있다. 한국은 올해 전체 원유 수입량 중 69.5%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카타르 등 중동에서 수입했다. 이란이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 개입할 경우 석유 공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무력충돌이 이스라엘과 인접한 홍해와 수에즈운하로 번지는 경우다. 이 경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대 수로가 마비되면서 사실상 유럽과의 물류가 단절되게 된다.

국내 해운사 중에서는 HMM이 유럽향 노선을 갖고 있는데, 총 20척의 선박이 연간 100여 차례 수에즈운하를 지나고 있다.

수에즈운하의 마비는 단순히 국내 해운사의 유럽향 물류 마비 수준이 아닌 전 세계 물류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실제 2021년 일본의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되면서 글로벌 물류대란을 심화시킨 바 있다.

HMM 관계자는 “현재는 중동 노선 등에 큰 차질은 없지만 수에즈운하에 영향을 미친다면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며 “회사는 중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사들의 4분기 수익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운임은 여전히 낮은데 전체 운영비의 20%를 차지하는 유가가 치솟으면서 수익성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저점인 886.85포인트를 기록 중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지난 6일 배럴당 84달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소식 이후 10일 88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확전 우려가 감소해 11일 장 마감 기준으로는 85.82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SM그룹 관계자는 “사우디가 평화적 입장을 취하고 있어 유조선 노선에 대한 우려는 다소 감소했지만 운영비 증가는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운임이 저가에 형성된 상태에서 유가 상승은 해운사에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3월 이집트 수에즈운하에서 좌초한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