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악몽' 스토킹下] 가해자-피해자 '즉각 분리' 대책 요원…'긴급이주권' 필요
2023-10-12 11:41
반의사불벌죄 폐지, 전자발찌 부착 도입 등 지난 6월 통과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가해자의 접근을 막지 못하고 2차 피해를 불러일으킨다는 현행법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해자와 피해자 즉각 분리를 통한 피해자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직접 법원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안전조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에서 시행 중인 '스토킹 피해자 긴급이주권' 등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토킹 범죄 증가 추세…스토킹처벌법 개정안,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빠져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무소속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는 2만1817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4515건에서 2021년 1만4509건, 지난해 2만9565건으로 스토킹 신고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신고는 3만건을 넘길 전망이다.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스토킹 신고 증가 추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토킹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이전부터 법조계 등에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등이 빠져 신속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보호명령제도를 스토킹처벌법에도 도입, 피해자가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법상 피해자 보호에 실효적인 잠정조치들은 검사의 청구나 법원이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잠정조치가 며칠 만에 즉각적으로 결정되지 못해 피해자 보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잠정조치는 즉각적인 피해자 보호보다는 수사와 공판에 중점이 있었고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가 수사기관 대응 이전에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한 방책을 마련해 이를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도입된다면 피해자 보호를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美, 긴급이주권·스토킹 종합지원 시설 마련…"벤치마킹 필요"
잠정조치 등과 연결될 수 있는 '주거권 보호조치'를 도입해 스토킹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물리적으로 확실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의 경우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라 법원의 보호명령이 있는 경우 스토킹 피해자의 긴급이주권 행사나 계약 중도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임차인이 스토킹 피해를 입은 경우 임시보호명령 또는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이를 서면으로 고지하고 고지 후 30일 이내 상호 합의한 날짜에 임대차 계약을 종료하는 식이다.미국의 스토킹 자원센터, 스토킹 예방센터 등과 같은 종합지원시설을 벤치마킹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 센터는 스토킹에 관한 전문정보 제공, 정책과 프로토콜 개발, 관련기관·단체 전문가 교육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조치에 대한 효과, 비용분석 등을 통해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임시거소의 제공 및 숙식제공'을 넘어 주거권의 실효적 보호가 보장돼야 한다"며 "'국가나 지자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 지원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한 스토킹처벌법 8조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종합적 지원을 위한 센터 마련도 검토해 볼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