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검정고무신법' 논의…창작자 단체 "조속 통과돼야" 웹툰 플랫폼 "부작용 우려"

2023-09-18 17:41
문화산업 공정유통법, 지난 3월 故 이우영 작가 극단적 선택으로 재조명
재조명 이후 문체위는 빠르게 통과했지만 법사위 논의 과정서 반려
빠른 통과 원하는 창작자 단체와 지나친 규제 걱정하는 플랫폼 업계 입장 엇갈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오른쪽 둘째)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만화 '검정고무신'의 고(故)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출판사와의 저작권 분쟁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출판·만화업계 불공정 계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 계류 중이던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이 '검정고무신법'으로 불리며 재조명받았다. 다만 불똥이 웹툰으로도 튀면서, 네이버·카카오 등 웹툰 플랫폼을 운영 중인 업체들은 자칫 법 제정이 지나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크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은 지난 3월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2022년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 문체위 논의 과정에서 두 법안이 통합됐다.

해당 법안은 각종 불공정 행위들을 금지행위로 정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정조치를 취하는 것이 골자다. △제작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문화상품 납품 후 수정·보완을 요구하면서 그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 △문화상품 관련 기술자료 및 정보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 △판매 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되지 않은 가격 할인으로 인한 비용 등을 콘텐츠 제작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 △제작 방향의 변경·지정·교체 등 제작업자의 제작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행위로 정했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등 창작자 단체들은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한다. 이우영 작가의 극단적 선택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매절계약(창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제작사가 저작물 관련 모든 수익을 가져가는 계약)이 웹툰 작가들의 계약 과정에서도 여전히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다. 또 변형된 형태의 미니멈개런티(MG·최소보장금액)가 업계에 널리 퍼지면서 작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떠안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박광철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는 "많은 작가들이 각종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자정작용이 시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현재도 여러 규제들이 부분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강제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불공정 계약들이 만연한 것이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후 법안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법안에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주된 이유는 중복 규제 우려다. 검정고무신법의 규제 범위에는 출판·만화뿐만 아니라 방송영상물, 음악·게임 등과 관련된 산업도 포함된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이미 방송법과 IPTV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통해 방송영상물 사업자들이 금지행위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웹툰 플랫폼과 제작사 등 웹툰 업계 역시 고민이 깊다. 자칫 업계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이어져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관련 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플랫폼 등 콘텐츠 유통업체들은 금지행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데다가, 콘텐츠 종류별 특성과 거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자칫 전체적인 플랫폼과 제작사·작가 등과의 거래 관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만화·웹툰·웹소설을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사·출판사·플랫폼 등 20여개 사업자에 대한 불공정 약관 실태점검도 진행 중이다. 규제 논의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지 않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상생협력 환경 조성 방안' 토론회에서 "창작자에 대한 역할과 존중을 중요시하는 것은 시대가 변하거나 환경이 변하더라도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창작자와 함께 하는 웹툰 기업의 역할이나 중요도가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웹툰 업계는 창작자들이 단순히 플랫폼과 갑을관계가 아니라 상호 호혜적인 면도 크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최근 곽규태 순천향대 경영학과 교수 주도로 웹툰 작가 3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창작자들은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 연재의 장점으로 △합리적인 수수료율 △투명한 수익정산 등을 꼽았다. 업계는 기존 출판만화 시절에 대해 작가들의 수익배분율이 올라가고, 플랫폼으로 인해 콘텐츠를 접하는 독자들이 많아지는 등 플랫폼의 순기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문체위를 통과한 검정고무신법은 중복규제 등의 문제로 다음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반려됐고, 현재 세부 수정 내용을 문체위 차원에서 논의 중이다. 지난 7월 국무조정실을 통해 문체부와 방통위가 관련 내용에 대한 1차 조정회의를 했고 조만간 2차 조정회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