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입' 플리바게닝中] 美 형사사건 90% 이상·佛 경범죄 사건 '제한적' 활용

2023-09-17 10:28


10년째 플리바게닝 도입을 놓고 국내에서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가운데 해외 주요 선진국은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해 활발하게 활용 중이다. 미국은 이전부터 대부분의 사건을 플리바게닝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수사단계에서 정의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전통이 강한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플리바게닝을 일부 변형해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佛·英은 플리바게닝 법원 승인 필수..성문법 중심 대륙법계도 도입 확산

17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영미법계뿐만 아니라 대륙법계 일부 국가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플리바게닝을 명문화해 사법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있다.

플리바게닝을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곳은 형사사건의 90% 이상을 플리바게닝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1967년 전미 변호사협회(The American Bar Association)가 플리바게닝 제도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1971년 연방대법원이 일정한 요건 하에 유죄협상제도를 형사절차 일부로 인정하면서 제도가 정착됐다.

미국에서 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의 답변이 자발적이고 임의적으로 행해져야 하고 피고인 스스로 공소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점을 요건으로 한다. 플리바게닝으로 인한 결과도 인식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기소 이후 검사가 주체가 돼 플리바게닝을 하게 된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플리바게닝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 1970년 판례에서 처음 등장한 후 1994년 '형사사법 및 공공질서법'에 정식으로 법제화됐다. 영국에서 검찰과 피고인 간 플리바게닝은 법원의 승인을 받아 이뤄진다. 기소된 직후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협상이 가능하다.

2000년대 이후 대륙법계에서도 플리바게닝을 일부 도입해 활용하는 국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2004년 형사소송법에서 '유죄를 인정할 경우의 특례절차'에 관한 규정을 신설해 유죄협상을 제도화 했다. 다만 프랑스의 유죄협상제도는 법정형이 장기 5년 이하의 구금형 또는 벌금형인 경죄사건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는 등 대상 범죄가 제한적이다.

프랑스는 검사와의 플리바게닝 과정에서 변호인이 필수적이다. 당사자가 협상에 합의하더라도 판사의 승인결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영국과 같다. 다만 영미법계 국가와 달리 원칙적으로 검사의 기소 전에만 가능하다.

독일은 1997년과 2005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플리바게닝 협상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2009년 독일 형사소송법에 명문화 했다. 독일 역시 플리바게닝은 기소 이후 가능하다. 일본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 6월 플리바게닝 제도를 정식 시행했다. 
 
진화하는 범죄에 플리바게닝 필요성↑…"한국형 제도 도입을"
성문법이 중심인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도 플리바게닝이 제도화 되고 있는 점은 갈수록 범죄가 지능화, 첨단화, 은밀화되면서 범인 색출에 어려움이 가중돼 실체적 진실 발견이 더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미법계의 플리바게닝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보다는 '한국형 플리바게닝' 제도를 만드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김면기 경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형사사건이 계속 증가하면서 재판 절차 대신 보다 효율적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플리바게닝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980년대 이후 영미법계뿐만 아니라 대륙법계 국가도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대륙법계 국가들이 영미법계 플리바게닝을 그대로 도입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기소권, 형집행권 등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미법계 플리바게닝을 그대로 도입하게 되면 검찰이 사실상 재판권까지 행사하게 될 수 있다"며 "검찰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우리나라 형사사법절차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형 플리바게닝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