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완의 India Insight] 반쪽짜리 G20 정상회담… 한-인도 CEPA 돌파구 마련해야

2023-09-09 09:17

 

[김찬완 교수] 


 
공동성명 채택에 별다른 관심없는 인도국민

인도 뉴델리에서 9~10일 양일간 G20 정상회의 3개 세션(하나의 지구·하나의 가족·하나의 미래)이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모디 총리와 별도 양자 회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부채 구조조정, 디지털 공공 인프라, 다자개발은행, 가상화폐 규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 이번 인도 G20 정상회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불참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이 서구 중심의 반쪽짜리 정상회담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작년 12월 G20 정상회담 의장국이 된 이후 인도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비롯해 여러 장관급 회의를 14차례 진행했지만 단 한 차례도 공동선언문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 관한 내용을 공동선언문에 담는 것을 러시아나 중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장관급 회담에서도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데다 시진핑 주석까지 불참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비판하는 공동선언문에 동의할 것은 만무하다는 전망이다. 만약 인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 없이 끝날 경우, 세계경제와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G20의 역할과 능력에 회의감이 들것이다. 이렇게 되면 G20 의장국인 인도, 특히 모디 총리의 글로벌 리더쉽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해외 언론은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도 내부에서는 이 부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의 여러 장관급 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데 실패했어도 인도 야당마저도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다수 인도 국민도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될 것인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G20을 준비하며 새롭게 포장한 도로와 주변을 화려한 포스터와 꽃들로 치장한 것을 보고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모디 총리가 이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인도의 태도 변화에 별다른 압박을 가하는 것 같지도 않다.
 
글로벌 사우스와 서방 간의 가교 역할

인도는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남반구의 신흥국 및 개도국의 글로벌 사우스 리더로서 서방과의 가교역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인도는 자국과 특수 관계에 있는 러시아를 불편하게 하는 우크라이나 전쟁문제는 유엔(U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G20은 세계경제 문제를 다루는 최상위 포럼이라는 원래의 취지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세계경제와 금융문제를 다루던 기존의 G20 정상회담이 G7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중국 간의 경쟁구도로 변질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G20 의장국으로서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서방 간의 가교역활을 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프리카 55개국 연합을 G20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는 남반구를 대표하는 글로벌 파워 국가로서 자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이 약화한 틈을 타고 발 빠르게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는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국가들과 특수 관계를 유지해왔다.

영국 식민지 기간 70만 명 이상의 인도인이 모리셔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세이셀 제도 등으로 이주해갔다. 이들 후손이 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인도와 아프리카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하지만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공격적으로 아프리카에 추진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인도의 영향력을 약화하여 갔다. 따라서 인도는 이번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아프리카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다시 강화하고 글로벌 사우스 대표자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아프리카 연합을 G20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최대 관심사인 부채 구조조정, 다자개발은행, 기후변화, 개발격차 등의 안건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미국 등 서방 국가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아프리카 연합을 G20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데 반대하지 않고 있어서 인도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다.
 
“모디의 인도” 만들기 위한 총선 전략 일환

모디 정부는 G20 행사를 단순히 순차적으로 맞는 의례적인 의장국이 아닌 인도의 국제적 위상을 확고히 각인시키고 국내적으론 모디 총리가 꿈꾸는 인도를 만들기 위한 내년 총선 전략의 하나로 이용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전국 56개 도시에서 200개가 넘는 관련 미팅을 개최하면서 모디 총리의 지도력 아래 인도가 G20 의장국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해왔다. 인도 거리 곳곳에 설치된 G20 홍보 포스터에는 모디 총리의 사진이 들어가 있고, G20 정상회담 로고에는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상징인 연꽃이 들어가 있다. G20의 “0”자를 지구본으로 형상화해서 이를 BJP의 상징인 연꽃이 떠받치는 모습으로 G20 로고를 만들었다. 심지어 각급 학교에 G20 에세이 대회를 열면서 모디정부에서 인도가 G20을 개최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홍보했다. 인도 총리실과 집권당 BJP는 그동안 모디를 “성장의 인도”와 “강한 인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내세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제는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끄는 “글로벌 리더”로 홍보하고 있다.

모디가 이끄는 BJP는 ‘힌두 대 무슬림’, ‘힌두민족주의 대 범민족주의’, ‘비세속주의 대 세속주의’와 같은 대립구도를 형성하면서 분열의 정치, 갈라치기 정치를 한다고 야당들로부터 비판받아 왔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BJP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수 힌두를 결집 시키기 위해 G20 정상회담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인도 대통령은 G20 공식 만찬 초청장을 각국 정상에게 발송하면서 “인디아(India)”라는 영문 국명 대신에 “바라뜨(Bharat)”라는 힌디를 사용한 것이다. 그동안 인도 대통령은 대외적인 공식문서에 항상 “President of India”라고 명시했는데 이번 G20 정상 만찬 초청장에는 “President of Bharat”라고 명시한 것이다. 인도 야당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셨다. 야당들은 모디 정부가 향후 인도의 공식 영문 국명을 ‘바라뜨’로 바꿀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디 정부가 G20공식 만찬 초청장에 ‘인디아’라는 영문 국명 대신에 힌디 ‘바라뜨’라는 국명을 사용한 배경에는 힌두민족주의자들의 지지기반을 염두에 둔 점도 있겠지만, 최근 야당들이 만든 “인디아(INDIA)”라는 정치연합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 인도 총선을 앞두고 26개 야당은 BJP 정치세력에 맞서기 위해 가칭 “INDIA(Indian National Developmental Inclusive Alliance)”라는 연합정치 세력을 만들었다. 모디 정부는 또한 G20 정상 만찬에 전직 총리, 각 주총리들을 초청하면서 인도 국회에서 야당들을 대표하는 인도국민의회(INC) 당 대표는 제외했다.

인도가 준비한 G20 슬로건이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다. 힌두민족주의 지지세력만 생각하는 분열의 정치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든다. G20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시 미화’를 이유로 뉴델리 무허가 빈민촌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쫓겨나기도 했다. 이들에겐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라는 G20 표어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내년 총선에서 BJP가 승리하면 모디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다. 인도 역사상 인도 초대 총리인 네루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3연임에 성공한 총리는 없었다. 모디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하여 자신이 꿈꾸는 인도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모디 총리와 집권당 BJP는 G20 정상회의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있지만, ‘하나의 가족’이 되지 못해 누군가는 소외되고 누군가는 생존권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이러한 G20이 “모디의 인도”가 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G20 정상회담 인도 방문 계기로 14억 거대시장 확대 해야

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인 인도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미중 경쟁 구도 심화, 인도-태평양 시대 도래,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더불어 중국 경제까지 침체하기 시작하면서 인도와 협력을 증진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14억의 거대 내수시장, 저임양질의 풍부한 노동력,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의 우협력관계 등에 힘입어 인도 경제는 나 홀로 성장하고 있다. 인도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가치를 떠나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 차원에서도 우리는 발 빠르게 인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과 인도와의 경제협력 실태를 살펴보면 아쉬움이 많다. 대인도 투자는 2018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고 있고 이마저도 삼성, LG, 현대, 기아 등의 대기업 위주의 제조업에만 집중되어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인 일본의 경우 지속해서 대인도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2010년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아직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대인도 수출 증대를 위해 하루빨리 CEPA를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와 재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랫동안 한-인도 CEPA가 개선되지 못하다 보니 지금은 일본-인도 CEPA 대비 양허율이 낮고, 심지어 일부 품목은 평균 최혜국대우(MFN) 관세율보다 높은 실정이다. 또한, 양국 간 CEPA에 명시된 원산지 규정이 다른 FTA에 비해 원산지 결정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기 까다롭다 보니 원산지 인정에 2년 이상 걸려 인도 시장 진출 확대에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말로만 수출 품목 및 시장 다변화를 외칠 게 아니고 대인도 수출시장 확대를 위한 특별 대책위원회(Task Force)라도 만들어 CEPA를 개선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 G20 한-인도 정상회담과 올 한-인도 수교 50주년을 맞아 정부가 가장 급선무로 해야 할 분야가 바로 한-인도 CEPA 개선이다. 대통령실도 이번 G20 인도 방문을 계기로 한-인도 CEPA를 한층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만큼 기대가 크다.
 
 
김찬완 필진 주요 이력

▷인도 델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인도연구소 소장 ▷인도연구소 HK+ 사업단장 ▷<남아시아연구> 편집위원장 ▷Editor-in-Chief, Journal of India and Asian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