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홍범도 퇴출'...정치권, 때 아닌 이념전쟁

2023-08-29 00:00
장관직 건 박민식 "중앙정부 총력 대응"...강기정 "노태우 정부부터 했는데"
국방부 "홍범도 공산당 경력 부적절"...홍준표 "너무 오버한다"

지난 23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율성거리에서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이 '이념전쟁'으로 붙붙었다. 정부가 광주광역시 '정율성 역사공원' 추진에 급제동을 걸고,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를 추진하면서다. 정부와 여당은 해당 인물들에 대한 '공산당 경력'을 문제 삼아 "대한민국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지만 야당은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일부 논란이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 추진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 인사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다. 그는 장관직을 걸고 나섰다. 박 장관은 28일 호남학도병 성지인 전남 순천역을 찾아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며 "국민의 소중한 예산은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 철회에 장관직을 걸면서 "중앙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검토(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보훈부 외에도 행정안전부 등 유관 부처에서도 방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강기정 광주시장은 시청에서 기자들과 차담회를 하고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 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을 광주시가 책임을 지고 잘 진행할 것"이라고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1914년 광주 출생인 정율성은 항일 투쟁을 위해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활동을 하다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중국으로 귀화한 인물이다.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하며 '중국 인민해방군가(팔로군 행진곡)'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해 중국 3대 작곡가로 꼽힌다.
 
이에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 등 역대 정부에서는 정율성을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다. 강 시장은 "한·중 관계가 좋을 때 장려하던 사업을 그 관계가 달라졌다고 백안시하는 것은 행정의 연속성과 업무수행 기준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일침했다.
 
아울러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 등 독립운동가 5인 흉상과 용산구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 장군의 공산당 활동 경력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내세운 데 대해 이종찬 광복회장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 논란이 생각난다"며 "건국절 논란, 친일 논란, 국정교과서, 이제는 독립군 흉상 제거다. 윤석열 정권이 걱정된다.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말을 상기하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항일 독립전쟁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매카시즘'으로 오해받는다. 그만들 하라. 그건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러한 논란에 일단 거리를 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참모들에게 '정율성 공원 저지'를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홍범도 장군 흉상 퇴출' 역시 "국방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