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과 중국의 우려

2023-08-29 00:05

일본 경제는 금년 4~6월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1차 속보치)이 연율로 6%를 기록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경상GDP 성장률은 12%라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 내지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러 소비와 투자가 위축했던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일본 경제가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한편으로 중국 경제는 최근 대형 부동산 기업이 부도를 내고, 물가 상승률도 둔화되고 있어 일본식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일본 디플레이션의 계기는 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은행 부실채권 문제의 악화에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이 왜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또한 최근 회복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중국 경제 상황이 일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은 부동산 버블 붕괴가 계기가 되었으나 이에 따른 부실채권 문제를 1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하고 대형 금융회사의 부도가 잇따르자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할 수 있었다. 공적자금의 투입은 20개를 넘었던 시중은행의 합병을 촉진하여 3대 메가뱅크 체제가 출범하면서 2000년대 중반에는 부실채권 문제는 거의 해결됐다. 그러나 부실채권 문제의 악화 기간에 발생한 극심한 대출 회수, 대출 억제 현상의 후유증이 일본 기업의 투자 심리를 억제하고 ‘현금을 무조건 축적하자’는 경영을 강화하여 임금과 고용도 악화되고 소비를 위축시켰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의 만성화로 기업 대출 수요도 위축되는 가운데 통화량이 정체되고 기업과 소비자의 디플레이션 심리가 고착화되면서 엔고가 진행됐다. 일본 제조업에 대한 신흥국의 추격도 강화되고 제조업 사업체 수도 크게 감소해 끈질긴 디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되었다. 냉전 종식 후 한때 미·일 경제전쟁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은 엔고 유도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저출산·인구 고령화의 부담은 디플레이션의 결정적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에 따른 소비 위축, 잠재성장률 하락 효과가 일본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러던 일본 경제가 최근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것은 그동안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 엔저 유도 등 거시경제정책과 함께 반도체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유치, 시간당 1000엔의 최저임금 도입을 결정하는 등 임금 인상 정책이 효과를 보이면서 소비와 투자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완화에 주력했던 아베노믹스 때와 달리 최근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가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으며 수십 년 만에 일본에 공장을 신설하려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장기간의 구조조정으로 수익구조를 개선한 일본 기업이 디지털 혁명, 그린 혁명의 기회를 잡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디플레이션과 그 극복 추이를 볼 때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회사 부실채권의 누적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다만, 중국의 부실채권 문제는 1990년대 말에도 거대 국유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크게 대두한 바 있고 2015년경에도 차이나 쇼크로 인한 주가 및 위안화 폭락과 함께 악화되어 중국 정부는 그때마다 대처해 왔다. 이번 경우에는 그림자 금융이 매개가 되어 은행 등의 리스크의 불투명성도 있으나 일본 디플레이션의 교훈인 ‘금융 부실이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파급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중국 정부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리먼 쇼크 등의 대응에 있어서 일본 디플레이션의 교훈을 적극 활용해 왔다. 또한 일본의 버블 붕괴 당시 20개 정도에 달했던 시중은행 체제와 달리 중국은 이미 4대 은행 체제로 대형화가 이루어져 자본 기반이 강력하고 정부의 정책 추진도 기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일본의 버블 붕괴 당시와 비교해서 중국 정부가 부실채권 문제를 10~15년 정도 방치하거나 부동산 버블 붕괴로 극심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해 금융 시스템이 불안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저출산·인구 고령화, 미·중 마찰과 함께 성장세의 둔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노동력 투입 증가세의 감소와 함께 잠재 성장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 경제가 미·일 경제 전쟁에서 한때 고전한 바와 같이 미·중 패권전은 중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미·중 패권전에 따른 중국 경제에 대한 추가적인 하방 압력은 주변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미칠 디플레이션 압력도 크기 때문에 미국도 미·중 패권전에 따른 세계 수요 파괴 효과를 인위적으로 크게 확대하지 않도록 조절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또한 미·일 경제전쟁에서는 초엔고가 일본 제조업의 위기로 작용해 디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켰으나 중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대외자산 누적 속에서도 금융시장의 개방도가 당시 일본보다 낮아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유도 정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올해 일본을 능가하여 자동차 수출 1위국으로 부상하고 태양광 발전, 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도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거 일본과 같이 제조업이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다.

결국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중국발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파국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 세계 경제 수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으며, 우리나라로서도 산업의 디지털 혁명 및 그린 혁명 관련 투자와 함께 저출산·고령화 대응이 과제가 될 것이다.  
 
 
[사진=이지평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