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준엽 선생은 억압에 맞서 나라·학생 지킨 참스승"…고대 동문 한자리

2023-08-27 15:00
고려대, 26일 김준엽 탄생 100주년 문화제
다양한 세대 합심 400명 두달 넘게 준비
연합합창단 '독립군가' 공연…소통의 기회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김준엽 선생이 고려대 총장이셨다는 사실이 항상 자랑스럽습니다. 선생의 삶을 다룬 책 <장정>에도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고려대 법학과 93학번인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는 김 선생 회고록 <장정>이 본인 인생의 책이라고 말했다. 임 부장검사는 김 선생이 고려대 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스승으로 생각하는 분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들을 지킨 행보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행사로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던 그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고려대 동문들이 합심해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회의를 거쳐 준비했다. 이날 행사에는 임씨를 비롯해 고려대 동문 400여 명이 참석해 김 선생을 기렸다. 79학번·81학번·82학번·83학번·89학번 합창단이 김 선생 삶을 다룬 노래를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동문들이 학창 시절과 김 선생을 추억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됐다.
 
총장직 사임 감수하며 학생 지킨 참스승
고려대 법학과 04학번 전민형씨가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문화제 개막을 알리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79학번부터 04학번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친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려대 법학과 04학번 전민형씨는 무대에서 <장정>을 읽은 소감을 밝히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전씨는 "<장정>은 김준엽이라는 인물이 현대사 고난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 승리해 나간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김 선생 공적 일화들이 젊은 세대에 전승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씨가 이번 행사를 기획·주도한 '운영위원회' 간사로 활동한 이유다.

행사를 기획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1984년 김 선생 총장 재임 당시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김 전 장관은 무대에서 "전 고려대에서 유일한 불법 총학생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대학 학생대표를 학생들 직접투표로 선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했다. 직접투표로 선출된 김 전 장관에 대한 제적 압박에도 당시 고려대 총장이었던 김 선생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제적하는 것은 반교육적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민정당 농성으로 고려대 학생 3명이 제적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김 선생은 '법원 유죄 판결이 아닌 단순 기소된 상황에서는 제적하기 어렵다'며 버텼다. 김 전 장관을 찾아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김 선생은 "내가 자네 나이일 때 독립군 활동을 했다"며 "그때 내가 생각했던 애국과 자네의 애국이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격려했다고 김 전 장관은 전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이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당시 김 선생 소신으로 제적을 피할 수 있었던 동문도 이날 행사를 찾았다. 고려대 경제학과 83학번 정모씨는 "추모문화제에 참석하니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김 선생은 결국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총장을 그만뒀다. 정씨는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며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고대 동문들
이날 행사는 바쁜 일상을 보내며 만나지 못했던 고려대 동문들이 한데 모이는 기회가 됐다. 고려대 경영학과 89학번 서희원씨는 합창단으로 참여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합창이 끝난 후 행사를 관람하러 온 동기들과 만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서씨는 "83학번 선배들 요청으로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며 "준비하면서 김 선생에 대해 알게 돼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문화제'에서 고려대 동기회 합창단 6개 팀으로 이뤄진 연합합창단이 '독립군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89학번 김모씨도 89학번 합창단 공연을 보러 행사에 참석했다. 김씨는 "행사에 참석해 김 선생을 알아가서 좋고 오랜만에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나 너무나 반갑다"며 웃었다.

가족들과 행사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 재학생 강동우씨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연장에 왔다. 83학번 합창단 공연에 나선 아버지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강씨는 "재학생이지만 김 전 총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공연과 영상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