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메이드 인 차이나'…'창얼다이'가 살릴 수 있을까

2023-08-16 09:59
中 점차 '세계의 공장' 타이틀에서 멀어져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인건비 상승까지 겹친 영향
'첫 번째 세대교체'로 공장 부활 계기 만든다

중국 산둥성 더저우시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선언하며 국경을 ‘재개방’한 올해 초부터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훙수(小红书)에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창얼다이(廠二代·공장주 2세)’들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 제조업의 ‘세대 교체’와 ‘위기’가 동시에 본격화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등장하게 된 것. 이들은 공장을 물려받은 스토리를 샤오훙수에 공유했고, 이렇게 형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공장 운영의 고충 등을 공유하며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중국산)’ 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신조어 ‘얼다이(二代·2세)’는 중국에서 계층 세습화 문제가 대두되던 10여년 전 처음 등장했다. 대표적으로는 고위관료 2세를 뜻하는 ‘관얼다이(官二代)’와 창업주 2세를 뜻하는 ‘촹얼다이(創二代)’, 부유층 2세를 칭하는 ‘푸얼다이(富二代)’ 등이 있다. 다만 창얼다이는 출발점이 다소 불리하다는 점에서 다른 ‘2세’들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이들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에 해외 유학도 다녀오고 남부러울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명성을 잃어가는 현시점에서 짐을 떠안듯 부모가 키워온 공장을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中, 점차 세계의 공장 타이틀에서 멀어져 
중국 제조업의 전성기는 지난 2001년 12월 성사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찾아왔다. 중국은 1986년부터 장장 15년에 걸친 협상 끝에 미국의 동의를 얻어 143번째 WTO 회원국이 됐다. 서방과 중국 사이의 교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후 중국은 ‘인구 보너스‘ 효과를 활용한 저가 공세로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뿌리다시피했고,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따게 됐다. 이처럼 부모 세대는 WTO 가입과 더불어 부동산 호황, 급속한 도시화 등 중국의 경제 성장 황금기를 누리며 제조업 공장을 비교적 수월하게 키웠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체들은 작금의 제조업 업황을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중국 부동산 시장에 빗대며 “(부동산 시장보다) 나을 바가 전혀 없다”고 호소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달 미 상무부 무역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올해 1∼5월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은 1690억 달러(약 214조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25%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미국 전체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3%포인트 하락한 13.4%를 기록해 1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고꾸라졌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중국의 수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5% 감소하며, 월간 수출 증가율로는 2020년 2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 반등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하락 정도가 코로나19 발생 초기 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심각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인건비 상승까지 겹쳐
중국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는 크게 대외적 요인과 대내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외적 요인부터 살펴보면,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인해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중국산 꼬리표를 떼려는 서방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여러 국가로 공급망을 분산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국 공급망에 ‘올인’했던 애플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은 그동안 아이폰, 에어팟 등 주력 제품들을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했지만, 작년 9월부터 스마트폰 새 모델 아이폰 14 일부를 인도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오른 중국의 인건비와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 구인난이 심각해진 점도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에 불을 지폈다. 중국의 16~24세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21.3%를 찍으며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중국 국가통계국이 7월 청년실업률 발표를 중단하면서 이를 두고 실업 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반면 제조업계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국의 한 컨설팅 업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제조업체 중 80%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명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고비를 맞은 상황에서 중국 제조업의 첫 번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고학력의 젊은 피인 창얼다이들이다. 이들은 MZ세대 특유의 감성과 자신감으로 중국 제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든 세대가 물러날 때가 되면서 후계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산업을 구하고 있다”고 창얼다이를 소개했다. 
 
‘첫 번째 세대교체‘로 공장 부활 계기 만든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자오씨(27)는 지난해 말 아버지의 의류 공장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재에 막혀 거래처로부터 계약 파기를 통보 받은 것을 계기로 공장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고 SCMP에 전했다.

자오씨는 “연간 약 20만벌의 양복을 공급 받기로 한 무역업체가 미국에 있는 고객사로부터 캄보디아로 소싱을 전환하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제는 무역 회사를 건너뛰고 직접 팔 뻗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창얼다이가 제조업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한 첫 번째 방안은 국내 시장 확대다. 자오씨는 이를 위해 소셜미디어에 제품 노출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 몇 달만에 자오는 샤오훙수 창얼다이 커뮤니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가 됐고, 덕분에 온라인을 통해 고객을 유치하며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품질 강국’을 강조하며 다시 제조업 굴기에 나선 중국 정부의 야망을 뒷받침하는 것 역시 이들 창얼다이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발표문을 통해 “중국 제조에서 중국 혁신으로, 중국 속도에서 중국 품질로, 중국 제품에서 중국 브랜드로 중국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역시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판씨(27)는 스파용품 제조업체를 물러받았다. 그는 “더 이상 저가 경쟁력을 앞세우면 안 된다”며 “가격 경쟁을 지속한다면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판씨 회사는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한 결과 한국에서 열린 뷰티 무역박람회에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후 3년간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서서히 안정되었고, 더 많은 해외 고객들을 유치하면서 수출이 사업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판씨 회사는 작년 말에 지방정부로부터 ‘첨단 기업’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시대에 맞춰 공장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창얼다이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과 다르게 조금은 운이 좋은 창얼다이도 있다. 다른 전통 제조업과 달리 2011년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게 된 중국 화학산업에 종사하는 창얼다이 쑨씨(27)다. 그럼에도 쑨씨 역시 글로벌 수요에 발맞춰 친환경 접착제 개발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다. 쑨씨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심지어 아프리카와 같은 일부 신흥국들도 화학산업을 키우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이들은 20년 전의 중국과 같다. 우리가 나아가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이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이게 바로 중국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