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닛 밟은 자폐성 장애인...헌재 "재물손괴죄 기소유예 부당"
2023-08-15 10:55
다른 사람의 자동차 보닛(엔진 덮개)을 발로 밟아 찌그러뜨렸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자폐성 장애인이 헌법재판소에서 구제받았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27)가 낸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서울남부지검의 기소유예 처분을 지난달 20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
A씨는 2020년 7월 길을 걷던 중 서울의 한 아파트 앞 주차된 아반떼 차량을 발견하고 보닛 위에 올라가 발로 두차례 강하게 밟은 뒤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다음 날 오전 보닛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 차주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인근 장애인복지관에 대한 탐문수사로 A씨를 피의자로 특정한 뒤 그를 불렀지만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자폐성 1급 장애인으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경찰은 A씨 대신 동석한 그의 모친의 진술을 받았다. 모친은 A씨의 장애에 관해 진술했고 차에 올라탄 경위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조사는 약 13분 만에 끝났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그의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해 같은 해 8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고 수사경력자료도 5∼10년간 보존된다.
헌재는 이 같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고 보고 취소했다.
헌재는 "재물손괴죄가 인정되려면 청구인(A씨)이 차량의 효용을 침해하겠다는 인식을 미필적으로나마 가져야 하고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도 갖춰야 한다"며 "수사 기록의 증거들만으로는 A씨에게 재물손괴의 고의와 책임능력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는 행위 당시 A씨의 자폐성 장애의 내용과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수사도 없이 청구인의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며 "처분에 중대한 법리 오해 내지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