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융위, 스타트업 아이디어 꿀꺽...정부 실적으로 둔갑한 '대환대출 플랫폼'

2023-08-14 05:00

[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가 은행권의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발표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서비스’가 소규모 핀테크 기업의 사업 아이템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소·약소기업의 혁신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그들의 혁신을 정부의 실적으로 둔갑시킨 꼴이다.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핀테크 업체 피노텍은 수차례 영업점 방문이 필수였던 대환대출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아이디어를 금융위에 제시해 2018년 10월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됐다. 피노텍은 이 제도로 은행만 할 수 있던 업무를 온라인 대환대출 플랫폼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피노텍은 지난 2020년 11월에도 지정대리인으로 재선정돼 혁신 핀테크 기업으로 승승장구했다. 실제로 대환대출 앱 ‘싸니자로’를 출시해 글로벌 테크 박람회 ‘코리아 핀테크 위크’에서 10대 체험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부스를 찾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각종 핀테크 혁신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피노텍의 혁신에 제동이 걸렸다. 대환대출 서비스의 핵심은 많은 금융사의 참여인데, 지정대리인 제도가 정한 소수의 은행하고만 사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피노텍이 어려움을 겪던 중 돌연 금융위가 카드사와 은행을 비롯한 전 업권이 참여하는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공표했다. 피노텍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대환대출 플랫폼이 금융위의 정책으로 둔갑한 것이다. 공표 당시 대환대출 플랫폼의 아이디어가 피노텍에서 나왔다는 점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금융위는 오는 12월 대환대출 플랫폼을 주택담보대출까지 확장하는 과정에서 피노텍의 주력사업인 전자등기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게 진행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피노텍 측과 연결이 끊겨 관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환대출은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이기 때문에 피노텍의 혁신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위의 대환대출 인프라는 산하 기관인 금융결제원이 대출금을 실시간으로 상환하게 했다는 점에서 피노텍의 서비스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금융서비스가 금융위 탓에 묻힌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핀테크 업체 씨비파이낸셜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예금중개 서비스'를 시작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았지만, 금융위가 다른 빅테크와 핀테크 업체에 같은 자격을 부여하면서 독보적 업체로 두각을 나타냈던 씨비파이낸셜은 현재 25개 업체 중 하나로 전락해 시장 점유율이 0%에 수렴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