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죄' 해병대 전 수사단장, 국방부 검찰단 수사 거부
2023-08-11 09:30
"국방부 검찰단, 수사 외압 행사한 국방부 예하조직…공정 수사 못 이뤄져"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 전 수사단장은 11일 입장문을 통해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의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보고했다”며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차례 수사외압과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왜 오늘 이 자리까지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해병대는 충성과 정의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 저는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도 모르고 정무적 판단도 알지 못한다”며 “다만 채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해병대 제1사단 소속이던 채 상병(당시 일병)은 지난달 19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구명조끼 착용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후 해병대 수사단은 이번 사고 경위 등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였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보고서를 결재까지 끝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같은 달 31일 돌연 해병대에 언론 브리핑과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 경찰에 공개할 내용에서 책임자 범위와 혐의 사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박 전 수사단장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명시적으로 전달받은 적 없고, 오히려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채 상병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군 관계자들의 혐의 내용을 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달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보고서를 이첩했고,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이와 동시에 박 전 수사단장을 보직 해임했으며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장관보다 윗선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채 상병 사망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 명단에서 임성근 1사단장, 박상현 1사단 7여단장을 제외하라는 지시가 해병대 수사단에 전달됐다는 주장이다. 국방부는 이른바 ‘윗선 개입 의혹’에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