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결혼하고 어렵게 마련한 생애 첫 집, 정부에 사기당한 기분…전면 재시공해 달라"
2023-08-01 17:13
1일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 철근 누락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보강 작업을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날 파주 운정(A34 임대), 남양주 별내(A25 분양), 아산 탕정(2-A14 임대) 등 지하 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사진=박새롬 기자]
"부실공사 얘기는 뉴스에서만 들었지, 우리 아파트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너무 절망적이라 눈물이 나옵니다. 지금 당장 나갈 수도 없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불안해요."(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40대 여성)
1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신도시 A25블록에 위치한 아파트 현장에서 만난 입주민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 단지는 지난해 4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총 380가구(분양 252가구, 행복주택 128가구) 규모의 LH 공공분양아파트로, 지하 주차장의 무량판 기둥 전체 302개 중 42%에 해당하는 126개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입주민 대부분은 첫 내집마련으로 부푼 꿈을 안고 자리잡기 시작한 신혼부부들이다.
이날 단지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불안함을 토로했다. 자녀 세 명을 둔 40대 남성 김모씨는 "신혼희망타운이라 갓난아기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 있는 집이 대부분인데, 사고는 언제 갑자기 일어날지 알수 없으니 너무 불안하다. 그런데도 당장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호소했다.
분양 가구의 경우 실거주 의무 기간이 있어 당장 집을 떠날 수도 없고, 추후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입주민들의 걱정거리다. 강씨는 "3년간 실거주해야 하는데 기간을 다 채운다 해도 다 빚내서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어렵다. 부동산 시장도 안 좋은데다 '철근 누락 아파트'로 낙인찍힌 만큼 새로 입주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결혼 5년차인 한 30대 남성도 "결혼 4년 차에 당첨돼 대출을 전부 땡겨 마련한 첫 집으로, 여기서 아이도 낳고 잘 살아가려고 했다"면서 "자녀계획을 세우며 아이 방도 미리 꾸며놨는데 이번 일로 아내가 불안하다며 자녀는 다음 집에 가서 낳자고 해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LH가 발주해서 정부가 책임지는 단지라 생각했는데 일개 사기업만도 못하다. 완전히 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분노했다.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 LH 철근 누락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1일 오전까지 붙어있던 공사 안내문 [사진=박새롬 기자]
LH는 다음달 30일까지 7억5000만원을 들여 슬래브 보완 공사를 한다는 계획이지만 입주민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린 자녀를 둔 한 30대 입주민은 "주차장 위에 사람 사는 집이 있을 텐데, 보강공사가 안전하게 잘 될지도 믿음이 가질 않는다"며 "이제 부실공사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못 믿겠다. 애초에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집을 이렇게 지었겠냐"고 반문했다.
입주민들은 전면 재시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분양대금을 환수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보상책을 원했다. 마이너스옵션으로 자비 5000만원 이상 들여 인테리어를 했다는 한 입주민은 "인천 검단신도시처럼 여기도 전면 재시공해야 된다"면서 "그럴 수 없다면 분양대금,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고 바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번 일로 집값은 박살났다고 본다"면서 "돈 낸 만큼만이라도 회수하고 나가고 싶은데 집값이 떨어질 것 같다"고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LH 측은 해당 아파트 입주민 협의회와 시공사, 감리단이 참석한 입주자 설명회를 2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정해진 일정이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같은 날 철근 누락이 확인된 수서역세권의 한 아파트 단지도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해당 단지는 이날 아파트 정문을 걸어닫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기자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려 하자 해당 아파트 관리인은 강하게 제지하며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 관계자는 "관리사무소로부터 아파트 내부에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철근 누락 사실이 알려진 이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기자들을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민들 또한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값이 떨어지고,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조롱거리가 됐는데 주민들 기분이 좋겠냐"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재산권 침해 사안인데 주민 동의 없이 단지명을 공개한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