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극우화하는 유럽 정치 …드리우는 전쟁의 그림자

2023-07-25 06:00

[안상준 교수]


 
2015년 여름 학생들을 인솔하여 동유럽 현장학습을 다닐 때였다.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켈로티 역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난생 처음 마주친 생경한 광경에 당혹스러웠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자국을 버리고 서유럽 국가로 망명하려는 난민들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뉴스에서 듣던 난민의 실체를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면서 이주, 국적 그리고 평화 등 인간의 생존과 그 가치를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영화 ‘스위머스’(The Swimmers)를 감상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는 무작정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 땅으로 향하는 난민의 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베를린 난민촌에 들어간 시리아 수영선수 출신 자매가 각고의 훈련 끝에 IOC ‘난민대표선수단’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하는 스토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독일 총리 메르켈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홍보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 여전히 지중해의 파도는 난민의 생명을 집어삼키기 일쑤고 유럽 각국은 이주민 정책으로 쉽게 내홍에 휘둘린다. 바로 지난 7월 초 네덜란드 연정의 내각이 총사퇴를 결정했다. 연정 붕괴의 발단은 난민 정책에 대한 이견이었다. “전쟁 난민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전쟁 난민들이 자녀를 데려올 경우 최소 2년을 기다리도록 하겠다.” 중도우파 보수 정당 ‘자유민주인민당’을 이끌며 14년째 총리직을 수행하는 마르크 뤼터가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난민 수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가능한 한 가족의 입국은 보류하자는 방안이었다. 연정의 파트너 중도좌파 정당 ‘민주주의66’은 이러한 반인륜적인 난민 정책에 강력히 반발했고 연정은 붕괴했다.
사실 이 뉴스를 접하고 ‘네덜란드 너마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러웠다. 강소국 네덜란드가 어떤 나라인가? 필자가 아는 한 네덜란드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국가에 속한다. 16~17세기 전 유럽을 광기와 전쟁으로 몰아넣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서 박해받는 신앙인들의 종착역은 네덜란드였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방과 관용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국가였다.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포용은 근대 초기 이래 네덜란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 네덜란드마저 난민에 대하여 점점 제한적인 수용으로 선회하는 상황은 유럽이 난민 수용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읽혔다.
뤼터 제안의 문제는 극우파의 논리를 보수 집권여당이 정책에 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는 네덜란드 국민의 상당수가 이민자 수용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민에 관한 강경책이 극우 정당이 이민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을 띠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독일의 정치적 상황 변동은 더욱 우려스럽다. 전임 총리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에 반발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이 심상치 않아, 이러다가 극우 정권의 성립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섬뜩할 정도이다. 실제로 지난달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후보들이 시장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작센-안할트주 라군에스니츠 시와 튀링엔주 존넨베르크 시로, 모두 과거 동독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들이다. 통일 이후 2등시민의 불만을 꾸준히 표출한 동독 지역 주민들이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은 10년 전 창당 초기부터 예상 밖의 인기를 얻었는데, 세계 경제의 위기와 그로 인한 실업률 증가라는 상황이 극우가 성장할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방의회와 연방의회를 넘어 이미 유럽의회에도 진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치 정권의 퇴출 이후 독일 정치에서 극우 성향 시장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분명하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는 이런 변화에 대한 우려를 실증적으로 반영한다. 극우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집권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일요일에 총선이 치러진다면’ (Polit Barometer)] 

SPD(사회민주당, 중도좌파, 현 집권당)
CDU/CSU(기민련 =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중도우파)
Grüne(녹색당, 중도좌파, 연정 참여)
FDP(자유민주당, 중도우파, 연정 참여)
AfD(독일을 위한 대안, 극우 정당)
Linke(좌파당, 좌파 정당)
Andere(기타 소수 정당을 통칭)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을 위한 대안’은 20%를 얻어 아직 집권까지는 부족하지만 제1야당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중도우파 보수당 기민련이 여전히 1당의 지지세를 획득한 가운데, 현 집권 여당 사민당의 지지세는 3위에 그쳐 초라하기 그지없다. 녹색당이 분전하는 모습이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을 저지할 정도의 지지는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중도좌파와 좌파가 인기를 잃는 만큼 극우 정당의 지지가 확대되는 추세가 역력하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난민 정책의 반동으로 보수 연정이 붕괴하고 극우적 성향의 정치세력이 약진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들의 극우파 득세와 더불어 유럽 정치 지형의 전반적인 극우화 경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00년 만에 도래한 이탈리아 극우 정당의 집권, 프랑스 극우 정당의 괄목할 만한 의회 진출, 대표적인 북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의 제2당 지위 확보 등 주요 국가에서 극우 세력의 선전은 개별 국가의 차원을 넘어 범유럽적이다. 그래서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어느 정도 약진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6월 하순 프랑스에서는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검문 중에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7월 초순까지 낭테르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이주민의 폭력적인 항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검문 과정에서 이미 프랑스 경찰은 소년에게 위협을 가했고, 소년의 저항은 곧바로 총격으로 이어졌다. 2005년 경찰의 추격에 쫓기던 두 청년이 철조망을 타고 넘다가 감전사를 당한 사건과 판박이다. 물론 이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시위대의 구호에서도 이는 감지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프랑스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를 청소하고 물건을 배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가 이주를 허가한 과거 프랑스 식민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주민들이었다.
이번 시위로 극우파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의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다. 여론의 추이를 보면 그는 이미 대통령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차마 자기 손으로 극우 대통령을 찍을 수 없었던 프랑스 국민의 양심(?)은 어쩔 수 없이 마크롱을 선택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 마크롱은 철저하게 친기업 반서민 정책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중도우파도 중도좌파도 몰락한 프랑스 유권자의 표심에 주목하는 이유다.
유럽 정치 지형의 극우화는 전쟁의 위험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속되는 경제위기, 장기적인 실업률 증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적인 삶의 질 저하는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고 분노와 혐오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20세기 초반 인류의 재앙이 다시 도래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1차 세계대전은 흔히 제국주의 전쟁으로 불린다. 유럽의 열강이 제국주의를 본격적으로 실천하며 식민지 개척에 나선 시점은 바로 독일통일 직후인 ‘1873년 공황’기였다. 비스마르크는 동맹체제로 신생 독일제국에 다가오는 전쟁을 막았지만, 마침내 독일이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1900년 전후 유럽의 근대화와 번영을 가리키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은 시절)’는 외적으로는 열강의 식민지 경영과 세계 분할, 내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혁명의 열기를 동반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차 대전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총력전이었다. 전쟁은 무려 4년을 끌었고 100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년 뒤 극우 전체주의자들은 전 인류를 또다시 전쟁의 참화로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6년 동안 7000만명이 희생되었다. 그 근저에는 세계 경제의 파탄, 개인의 생존 위기, 불평등과 사회적 원한이 도사리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전쟁을 감행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우민화가 뒤따랐다. 그렇게 나치가 탄생했고,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가 벌어졌다.
쿼바디스(Quo vadis)? 지난 세기의 역사를 되새기며 묻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