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시선) 오염수 논쟁하느라 '원전 르네상스' 놓치지 말라
2023-07-06 15:45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리히터 척도로 9.0. 지진이 일어난 지 50분 후 파도가 높아지면서 내륙으로 돌진해 해안선을 휩쓸고 15m 높이의 쓰나미가 원자력 발전소의 5m 방호벽을 넘어 밀려 들어왔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는 1880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상자가 두 명 발생했지만 이것은 쓰나미로 인한 익사였다. 방사성 물에 침수된 지하실에서 발을 적신 일부 노동자들은 다리에 화상을 입었으나 곧 치료되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물리학 명예교수인 웨이드 엘리슨이 쓴 최신 저서 《생명을 위한 원자력》에 나오는 이야기다. 엘리슨 교수는 ‘후쿠시마에서 누출된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몇 년 동안 매일처럼 보도하던 언론에 설명이 요구된다. 자외선으로 인한 암은 흔히 볼 수 있고, 핵 방사선으로 인한 암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데도 대중의 우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지적한다.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고 원천 봉쇄돼 언론은 사진도 찍지 못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소비에트 철의 장막에 은폐돼 그 피해 실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24시간 뉴스채널로 생생하게 보도된 후쿠시마 사고는 초대형 쓰나미와 겹치면서 원자력이 대규모 사상자를 내는 공포의 에너지라는 인상을 확산시켰다.
일본에서 모든 원자력 발전소는 폐쇄되고 대기 상태로 전환됐다. 올 4월 독일이 마지막으로 세 개 남아 있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수십 년간 독일에서 원전을 없애려는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고 박수를 쳤다. 원자력 발전이 후쿠시마 사고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다.
독일은 G7 국가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탄소 집중도가 높은 전력망을 가졌다. 독일은 전체 전력 중 3분의 1을 석탄에 의존한다. 스페인이 전력 생산의 3%, 영국이 2%인 데 비해 석탄 발전 비중이 매우 높다. 독일에서 쓰는 갈탄(褐炭·lignite)은 질이 낮은 석탄으로 이산화황(sulfur dioxide)과 질소산화물(nitrogen oxide)을 배출한다. 이러한 오염 물질은 심장혈관 질환, 뇌졸중, 만성 폐색성 폐질환 등 질병을 유발한다.
원전 폐쇄한 독일, 석탄발전 의존도 높아
2000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는 2022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 석탄 발전을 중단하는 전력계획을 수립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1월 1일자 사설에서 독일이 2038년까지 석탄 발전소를 폐쇄한다지만 원자력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전력망에 스트레스가 심해져 블랙아웃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당은 2010년 원전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나면서 유턴을 했다. 메르켈이 유턴한 이후 석탄발전에 쓰이는 갈탄은 수천 명 이상 사망자를 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독일과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도가 현재 전체 발전 가운데 70% 수준이다. 프랑스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아 국민 1인당 온실 가스 배출량이 독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광과 풍력은 청정 에너지 믹스를 위해 필요하지만 간헐적으로 중단되는 재생에너지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가동하는 전력원을 필요로 한다. 원자력은 석탄·석유·가스와 달리 탄소 제로이고 공급이 상시(常時) 안정적이어서 재생 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충하는 기저(基底) 전력이다. 발전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무엇보다도 원자력은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데 긴요한 에너지다.
독일은 태양열과 풍력 등에 투자를 많이 해 소요 전력 중 대략 3분의 1을 재생에너지가 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원자력 발전 폐쇄로 재생에너지 전력의 70%를 까먹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2010년부터 원전을 가동해 석탄 발전을 13%까지 감축했지만 원전을 완전 폐쇄하는 바람에 현재는 석탄 발전 비중이 31%로 높아졌다.
에너지 정책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맞부딪치는 최전선이다. 독일에서 보는 것처럼 진보 정권은 원자력 발전을 기피하고 재생에너지를 선호한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지지자 46%가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고 있고 공화당은 원전의 오랜 후원자다.
이코노미스트(7월 1일자)는 ‘미국이 원전 르네상스를 노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을 닫는 원자력 발전소들이 많았던 미국에 민주당 바이든 정권 들어서면서 원전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현재 전력의 19%를 원자력이 생산한다. 한국에서는 원자력이 문재인 진보 정권에서 박대를 받았으나 윤석열 보수 정권이 출범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의 진보와 달리 미국의 진보가 원자력을 대하는 자세에서 훨씬 실용적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에 재생에너지와 같은 세금 공제 혜택을 주었다. 행정부는 탄광촌 등 화석연료 지역에 원자로를 건설하면 개발업자들이 보너스로 세금 감면을 받게 하는 정책으로 근로자들에게 녹색 일자리를 제공했다.
원전에 대한 美 민주당 실용적 자세 배워야
후쿠시마 사고가 초래한 원전의 암흑시대가 가고 원자력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원자력 발전량을 2050년까지 300기가와트로 확대할 계획이다. 빌 게이츠는 원전 스타트업인 테라파워라는 회사를 설립해 안전하고 효율이 뛰어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인 '나트륨(Natrium)'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원자로는 대형 원전보다 누출·폭발 사고 위험이 낮아 친환경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4일 최종 보고서에서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세운 오염수 방류 계획과 관련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핵종제거설비(ALPS)에서 정화가 끝난 오염수는 1㎞에 이르는 해저터널을 거쳐 바다 밑 12m 지점에 설치된 방류구를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한국·중국·미국·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하고 있는 해양 방류는 실증 실적이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원전 폭발 당시 방사능 기준치를 넘어서는 오염수가 무단 방류됐지만 태평양을 돌아 4~5년 지나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했다. 2011년 이후 12년이 됐지만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다는 것이 해양수산부의 조사 결과다.
그러나 과학적 논리만으로 국민을 안심시키기는 어렵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어민 절반가량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6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7명에게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나라 해양과 수산물을 오염시킬까 걱정된다’는 답변이 78%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 인천·경기 등 서해안 지역에서 걱정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상황이 이럴진대 수산시장 수조의 물을 마시는 과시성 행사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해서는 일본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국 연근해 바닷물과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계속해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후쿠시마 항만에서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세슘이 검출되는 우럭이 나왔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공개 게시판에 ‘후쿠시마 방류수를 마실 수 있다’는 글을 올린 박일영 충북대 약대 교수도 “세슘은 방사능 총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기간인 반감기가 30년이다. 후쿠시마 농수산물은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수입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원자력 빼놓곤 기후변화 대응 어려워
오염수 논쟁에 휩쓸려서 놓치면 안 될 것은 세계적인 원전 르네상스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원전 강국인 한국으로서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고 기후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미적거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여당도 야당도 바뀌어야 한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