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美.中 잇따른 비공개 고위급 회담… 왜?
2023-07-05 06:00
경제.통상 분야 모종의 '딜'? ..숨은 의도 파악해 맞춤형 전략 필요
미국과 중국은 최근 고위급 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하며 관계 개선의 단초를 모색하고 있다. 모종의 ‘딜(deal)’이 협의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게 하는 정황적 증거가 적지 않다. 그중 특히 회담 이후 미국 측이 회담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사실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중국 측도 하나만 공개했다.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의 대미, 대중 외교도 경계심을 가지고 우리의 전략 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난 5월 10~11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중앙정치국 위원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을 했다. 이틀 동안 이어진 회담 중 하루는 8시간 이상 ‘마라톤 회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공개된 결과는 없었고 회담을 한 사실을 알리는 설명자료(readout)가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5월 25~26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간 회담이 있었다. 이들 회담 결과에 관한 공식 발표 자료는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나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어디에도 제공되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에는 설명자료만 간략하게 올라 있었다. 그리고 지난 6월 18~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 정치국 위원과 친강 외교부 부장과 이틀 동안 회담을 했으나 이 회담 내용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역시 설명자료만 공개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고위급 회담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설명자료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가히 그 의도와 취지를 의심할 만하게 하는 대목이다. 설명자료는 대체적으로 회담 내용을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관점에서만 담아 발표하는 자료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제, 요구사항, 의견에 대한 것을 감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설명자료가 이를 발표한 나라의 것만 일방적으로 부연하는 것이다 보니 상대방의 반응이나 대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것을 대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세 번의 고위급 회담 중 이것이 가능한 것은 블링컨과 왕이, 친강의 회담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중 양국이 고위급 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한 이유를 정황적·상황적으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최소한 비(非)정치·군사·외교안보 분야, 즉 경제·통상 분야에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6월 5일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시한을 앞두고 있었다. 백악관은 시한 연기에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시한 도래를 며칠 앞둔 27일(현지시간) 밤에 가까스로 미국 하원 의장 케빈 매카시(공화당)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지시간 5월 31일에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하는 안을 하원이 통과시키면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봉합 수준에 그쳤다. 미국 행정부의 핵심 부처(key departments)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긴축재정의 시간 속에서 공무를 봐야 한다. 이번 바이든-매카시 합의에서 핵심 부처가 정의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 부처의 예산이 앞으로 10년 동안 1% 이상 증가하지 못하는 제약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예산 규모는 2022년 수준에서 출발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1% 예산 상승률도 비국방 부처의 예산(non-defence budget)이 2024년에 동결을 거친 이후, 즉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미국의 건강보험과 식료품 구입 및 제공 지원 프로그램(food welfare) 등 사회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지원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곧 미국이 앞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긴축재정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일궈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국방 분야의 예산 감축을 하지 않고 증가할 공산이 커지는 상황에서 타 부처에 재정 긴축을 요구하면서 미국의 경제성장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야말로 쉽지 않은 숙제다. 더욱이 현재로서 미국 의회가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 법안을 대거 상정한 가운데 미국 경제의 회복을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숙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합의로 미국의 공무원과 군인들의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연방정부의 연금을 국민이 제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가를 채무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특히 두 개의 숙제를 다 하지 못했을 때 그의 재선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내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들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결정적인 오점인 국가부도위기 사태를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어떤 후보든지 이런 공화당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나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중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 3월 ‘리오프닝’을 선언한 이후 중국 경제의 회복과 성장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5월 중순 중국 국가통계국은 산업생산이 5.6% 증가했지만 예상치 10.6%를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지출이 전년 대비 18.4% 증가했지만 이 또한 예상치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16-24세 청년 실업률이 20.4%에 달하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작년 여름에 세운 종전 기록인 19.9%를 넘는 것이었다. 중국 전체 실업률이 5.2%로 떨어진 것은 위안이 되겠지만 지난달부터 중국 대학 졸업생이 약 2000만명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청년 실업률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경제 문제 해결이 시진핑 주석에게도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내년 말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중국 ‘배싱(때리기)’이 계속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시 주석의 3임 통치기간이 반환점을 돈다. 그가 4연임을 하려면 그 정당성을 경제 회복과 성장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 압박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6월 초 기준 미국 의회가 대중국 경제 압박과 규제와 관련해 상정한 법안만 194개에 이른다. 이들 법안 중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공산당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및 미국 내 활동 금지(H.R.3334, S.580, H.R.688, S.852), 중국 교육기관의 미국 진출 및 기존 교육시설 폐기(S.1121, H.R.1516, S.768, S.852, H.R.1157, H.R.1225), 중국 금융경제활동 제약(H.R.499, S.860, ), 중국과 무역관계 정상화(H.R.638, S.153, S.152), 중국의 제3세계 국가 및 발전 중 국가 자격 박탈(S.906, H.R.1137, H.R.1107) 등이 있다. 이 밖에 미국 의회는 중국의 미국 인프라 건설 투자 규제, 미국 내 소셜미디어(SNS) 규제, 미국 농장 투자 규제 등 법안을 상정해 중국에 대해 미국 시장 진출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중국 총영상관 폐쇄(H.R.2865)와 중국 공산당 미국 내 경찰 활동 금지 법안도 상정됐다.
미국 의회의 이 같은 대중국 견제 및 규제 법안이 다양한 분야에서 상정되면서 미국의 ‘디리스킹’ 정책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인적 교류와 연구기관 간 교류에 대한 제약은 물론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 구상도 4월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에 의해 밝혀지면서 중국은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블링컨·왕이 회담에서 왕이가 이를 직접 언급한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오는 6~9일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우리의 대중, 대미 전략도 변화가 필요하겠다. 우리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선언했던 2021년에 큰 낙수효과를 봤다.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1년 만에 4.15%를 기록하면서 전년(-0.71%) 대비 4.86%포인트 증가하는 결과를 봤다. 우리의 대중국 수출입도 각각 145%와 154% 증가했다. 대중국 무역 흑자는 486억 달러를 기록하며 2017년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관계를 개선하면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 만큼 대중국 무역구조도 선진국화, 즉 수입이 수출보다 크게 증가하는 시기로 진입했다. 그러면서 무역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중국 전략의 대명제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런 명제하에서 우리의 중국 전략은 비경제 분야(외교·군사·안보 등)와 경제 분야를 이원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함께 이같이 현안들을 이원화해 당분간 이들 두 분야에서 입장은 평행선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하는 전략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과 입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엄격하게 국내 정치용이고 미국 주도의 전략구상에 우방의 동참을 촉구하는 데 쓰이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만의 중국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은 첨단 과학기술의 원천 국가로서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을 통해 완제품을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가 한·미 동맹으로 기술 이전의 수혜를 보고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완제품에 대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미·중 간에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넷째, 미·중 양국의 정책 조정과 전략 변화가 앞으로 무상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정확하고 명확히 분석·판단하기 위한 정책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의 법안 분석에서부터 국내 정치의 동향 분석을 통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고 실제로 미·중 관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의 국내 정치·경제의 변화가 대외정책, 특히 대미 관계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의 대응 전략 마련도 가능하다. 다섯째,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대미 레버리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대중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우리의 대미, 대중 확대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모든 고위급 회담에서 상대방의 대중, 대미 전략과 입장을 알아보기 위한 탐구적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미·중 전문가들이 회담 준비에서부터 결과 분석 작업, 그리고 전략 수립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