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내렸는데 괜찮겠지"…식품 가격 인하 눈치 게임 시작

2023-07-03 18:30
국제 밀 선물가격 하락에 정부, 라면과 밀가루값 인하 권고
지난달 라면업계 '가격 인하' 선포…제과·제빵업계로 이어져
식품업계, 정부 눈치에 '내리고' vs 원재료가 부담에 '버티고'

26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라면판매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농심을 필두로 주요 라면 기업들은 물론 제분업계와 베이커리 브랜드도 가격인하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들이 원재료 가격 부담을 이유로 기존 가격을 고수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후발주자들의 경우 구매력이 약해 원재료 구매 단가가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에 비해 고가다.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구조로 정부 요구를 무작정 수용할 수 없는 셈이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방송에서 국제 밀 선물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값과 밀가루 가격 인하를 권고한 바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을 시작으로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가 라면 가격 인하를 결정한 가운데, 풀무원과 하림 등은 기존 라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권고에 가장 먼저 화답한 기업은 농심이다. 지난달 27일 라면업계 1위 기업인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 인하를 발표했고, 오뚜기와 삼양식품, 팔도도 줄줄이 제품 가격을 내렸다.

반면 풀무원과 하림은 가격 인하 조짐이 없다. 풀무원은 로스팅 건면을 활용한 '정·홍·백'과 '탱탱 쫄면'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림은 '더미식 장인라면' 등을 판매 중이다. 해당 제품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더해져 개당 2200원을 호가한다. 이들 기업은 2021년 이후 단 한차례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인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농심에서 시작된 가격 인하는 제분업계를 비롯한 제과·제빵업계로 이어졌다.

대한제분은 지난달 30일 밀가루 주요 제품을 평균 6.4%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정부 간담회 이후 소비자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밀가루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7월 1일자로 일부 과자 제품도 가격을 내렸다. 롯데웰푸드는 빠다코코낫, 제크, 롯샌 등 3종 가격을 5.6% 인하한다. 해태제과도 아이비 제품 가격을 10% 내리기로 했다.

SPC도 파리바게뜨 식빵과 바게트 등 10종 가격을 100~200원 내리고, SPC삼립도 식빵, 크림빵 등 20종의 가격을 인하한다. 

그러나 그동안 가격을 유지하고 중량을 늘리며 '착한 가격'을 주도해온 오리온의 경우 아직까지 가격 인하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오리온이 '착한 가격'의 상시 운영으로 추가적인 가격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국제 밀 가격 인하를 이유로 기업들의 제품가격 인하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지만, 원맥 선물 가격 하락이 밀 선물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아 원가 부담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원맥이 밀가루 제조에 적용되기까지는 수개월 이상의 시차가 발생한다. 실제 5월 밀의 통관 가격은 전년 대비 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엘니뇨 영향으로 주요 밀 생산국에서 건조기후가 예상되면서 밀 선물가격이 2주간 저점 대비 27% 급등한 상황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전쟁으로 원맥이 전년 대비 고점을 찍었고, 원부자재가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원가 압박이 심해진 상황"이라며 "고점 대비 원맥 가격이 소폭 내려간 상황에서 업체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격 인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