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기후 난민 '북극곰'에겐 시간이 없다

2023-06-28 06:00
'브루노'와 네안데르탈人은 유전자 남겼지만

[안치용 교수]



 
온실가스는 세계를 주유하며 편재하지만 기후변화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구에서 가장 변화가 큰 곳은 북극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2006년 이래로 매년 발표하는 ‘북극 성적표(Arctic Report Card)’에 따르면 북극은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하고 있다. 2020년 6월 북극권의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 마을 기온이 섭씨 38도를 기록해 북극 기온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17일 2027년 안에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66% 확률로 1.5도 상승제한 목표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류 문명이 배출하는 탄소와 올해 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엘니뇨로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1.5도’ 돌파는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른다는 의미다. ‘1.5도’는 인류가 정한 지구온난화 저지선이다.


 

캐나다 울룩학톡 공항에 전시돼 있는 피즐리 곰. [samuell wikimedia]



◆그롤라와 피즐리의 등장

기온 상승은 북극 생태계의 근간인 해빙 면적을 좌우한다. 해빙은 북극을 둘러싼 대륙 안쪽 바다의 최상층이 얼어붙은 것으로 북극 생태계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해빙 면적은 얼음 농도가 15% 이상인 바다의 범위로 정의된다. 해빙은 북극권 해양 포유류를 대표하는 북극곰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롤라 베어의 등장은 해빙이 줄어들면서 북극곰의 삶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2006년 캐나다 북극권에서 그롤라가 처음 발견됐다. 인간에게 사냥당한 곰이 얼핏 북극곰인 줄 알았으나 뭔가 생김새가 달라 연구 대상이 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생명과학 회사 WGI에서 사냥으로 죽은 이 곰의 DNA 검사를 한 결과 암컷 북극곰과 수컷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곰이었다. 캐나다 환경부의 야생동물 부서에서 일하는 연구원 이언 스털링은 이 혼혈 곰에다 그롤라 베어(grolar bear)라고 이름을 붙였다. 북극곰을 뜻하는 폴라(polar)와 회색곰을 뜻하는 그리즐리(grizzly)의 합성어다. 외관상 그롤라 베어는 북극곰과 회색곰 모두의 특징을 지녔다. 털은 전반적으로 흰색이지만 발 부분에 회색곰의 흔적인 회색 털이 섞여 있다. 몸 전반적인 모습과 크기는 북극곰에 가까우나 얼굴은 회색곰과 유사했다.
4년 뒤인 2010년에는 북극곰 수컷과 회색곰 암컷의 교배종인 피즐리 베어(pizzly bear)가 확인되었다. 참고로 이종교배의 작명은 아버지를 먼저 쓰는 가부장제 전통을 따른다. 그해에 미국 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소속 브렌든 켈리 연구팀은 <네이처>에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됨에 따라 북극 해양 포유류 34개 종이 이종교배가 가능한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34개 종에 당연히 북극곰과 회색곰이 들어 있다.
그롤라와 피즐리의 등장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북극곰이 남하하고 회색곰이 북상하며 두 종의 서식지가 겹쳐 생긴 일이다. 초반에는 이러한 일이 예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일반적 사실이 되고 있다.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팀이 알래스카의 카크토비크 마을을 탐사하여 고래 뼈더미에 접근한 목적은 그롤라와 피즐리가 한 생물 종으로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북극곰과 회색곰이 동시에 나타나며 그동안 보지 못한 생김새의 곰을 보았다는 마을 주민들의 전언이 관찰 카메라 촬영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소속인 켈리는 북극의 이종교배종을 연구하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서식지의 벽이 허물어져 이례적인 종간 교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태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주지 소멸로 난민이 된 북극곰

북극곰 난민이 생긴 이유는 그들의 영토가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 해빙은 계절 순환에 따라 3월에 최대 면적을 보이고 봄과 여름에 얼음이 녹아 9월에 최소 면적이 된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해빙 면적이 1979년에 약 645만㎢였지만 2021년엔 413만㎢로 줄었다. 그사이 한반도 면적 10배 이상의 얼음이 증발했다. 빙설자료센터는 북극 해빙 넓이가 10년에 평균 13.1%씩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면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북극 해빙의 질을 평가하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는 얼음의 나이다. 바닷물이 얼어 형성되는 해빙은 겨울에 생겼다가 여름에 녹는 단년생 얼음과 한 번 이상 녹지 않고 여름을 지낸 다년생 얼음으로 나뉜다. 다년생 얼음이 두께 4m까지 이르는 반면 단년생 얼음은 가장 두꺼워도 그 절반 정도에 머물고 다년생 얼음보다 쉽게 녹는다. 다년생 얼음은 북극 해빙 면적과 질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년생 얼음은 1985년 9월 440만㎢에서 2021년 9월 129만㎢로 감소했다. 만들어진 지 4년 이상인 두꺼운 얼음이 1985년 30.6%였으나 2021년에는 3.5%에 불과했다. 북극 해빙 대부분이 형성된 지 1년 미만인 얇은 얼음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이에 따라 북극의 연평균 빙하량이 21세기 말에 현재 대비 최소 19%에서 최대 76%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여름에는 21세기 중반 이후 북극에서 얼음이 거의 소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멸 시기가 더 이를 것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 북극 해빙의 소멸은 되먹임 효과를 가져와 북극과 지구 전체 기후에 심대한 파급효과를 초래하며 북극곰이란 생명종에게는 멸종의 길을 열게 된다.

◆멸종 시나리오

현재 북극에 북극곰이 수만 마리가 살고 있지만 21세기가 끝날 때 몇 마리가 살아남아 있을까. 해빙 시점이 점점 더 빨라지고, 얼음이 다시 어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북극곰이 남아 있는 얼음과 얼음 사이, 얼음과 육지 사이를 헤엄쳐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장거리 수영이 가능한 북극곰이지만 수영은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야 하고, 특히 새끼 북극곰에게는 큰 시련이 된다. 평소 바닷속에서 유영할 때 콧구멍을 닫아 물이 폐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만 북극곰은 어류가 아니어서 무한정으로 콧구멍을 닫고 바다를 이동할 수 없다.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먹이다. 북극곰의 사냥 전술은 바다 얼음에 나 있는 바다표범의 원뿔 모양 숨구멍 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가 바다표범이 숨을 쉬기 위해 숨구멍으로 떠오르면 앞발로 바다표범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것이다. 이어 바다표범의 목을 물어 다른 곳에 가서 먹는다. 북극 해빙이 녹으면 기존 사냥 전술을 버려야 한다. 북극곰의 생태를 관찰한 결과 바다 위 사냥터를 잃고 육지로 이동한 뒤에는 바다표범을 사냥할 기회가 거의 없어 굶주렸다. 몇몇 북극곰이 새알과 베리 같은 육지 음식을 먹지만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다 얼음이 계속해서 녹으며 북극에서 북극곰이 익사 또는 아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북극곰에게 알을 빼앗기는 흰기러기 같은 철새의 번식도 난관에 처한다.
얼음 감소와 함께 해수 온도 상승 또한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한다. 미국 플로리다공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이 2018년 5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온실가스 방출로 촉발된 바닷물 온도 상승이 2100년 안에 해양생물의 파멸적 손실과 해양 먹이사슬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는 21세기 말까지 바닷물이 평균 2.8도도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해양생물 중 상당수가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북극곰이 견디지 못하는 해양생물 중 하나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북극곰 없는 22세기 혹은 21세기?

지난 간빙기에도 북극곰과 회색곰의 교배가 있었다. 2009년 북극해 인근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브루노’라는 10만년 전 고대 북극곰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당시 북극곰과 회색곰 사이에 광범위한 교잡(hybridization)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현존하는 회색곰 유전자의 10%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고대 북극곰이 남겼으니 두 종간 교류가 얼마나 빈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곰은 이후 다시 각자 삶으로 돌아가 각자 영역에서 독립된 종으로 살아왔다. 20세기까지는 그랬다. 북극 얼음이 사라진 다음에 그롤라와 피즐리란 형태로 북극곰의 유전자가 일부 전해질 수 있겠지만, 만일 어느 날 북극에 얼음이 돌아온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북극곰을 다시 볼 수 있게 될까.
약 2만~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 전에 한동안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으며 그 기간에 둘 사이에 자손을 남겼고, 그 유전자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 10만년 전 북극곰과 회색곰 간 만남은 서서히 시작돼 오래 지속되다가 천천히 끊어졌다. 지금 북극곰은 100년을 채 못 남기고 종의 생존 혹은 하다못해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가 결정될 듯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 유전자의 4% 이하로 흔적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북극곰은 회색곰에 10%가량 유전자를 남겨놓고는 다시 개별 종의 삶을 살았다. 이번에 북극곰이 처한 곤경은 지난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어서 영토를 잃고 난민으로 지내다가 이전처럼 고토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남은 21세기 내내 북극해에서 북극곰이 헤엄치다 탈진해 빠져 죽고, 북극권 육지에서 굶어 죽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될 것이다. 북극곰의 곤경이 북극곰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