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차병원 의료사고 진실게임-⑤] 사망 당일 인공호흡기 '28분의 경보음', 왜?

2023-06-26 10:34
"기도 폐색 알리는 신호⋯보통 사람도 30분 숨 참는 것 불가능"

[사진=연합뉴스]

#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치유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만일 믿고 간 병원에서 더 중한 병을 얻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른다면 환자뿐만 아니라 유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각종 의혹이 잔재한 의료진의 과실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면 이는 유족을 두 번 울리는 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은 고스란히 유족 측에 있고 일반인이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본지는 ‘분당 차병원 의료사고 의혹’과 관련해 의료사고 의심이 드는 정황과 당시 상황, 그리고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주>
 
분당 차병원에서 수년간 반혼수 상태로 입원해 있다 지난해 4월 9일 사망한 이민영씨, 유족은 민영씨 사망 원인을 의료진이 9시간 석션을 하지 않아 기도가 막힌(폐색) 응급 상황을 뒤늦게 발견해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망 당일 새벽 환자 상태가 위급함을 알리는 인공호흡기 경보음이 30여 분간 울렸지만 너무 늦은 응급 조치로 민영씨 상태가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유족은 의료진이 처음에는 경보음이 울린 적 없다고 주장하다가 유족이 인공호흡기 경보음이 울렸다는 점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자 또 다른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인공호흡기 경보음과 관련된 의혹은 유족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면서 현재 경찰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해 5월 유족은 의료사고 의혹에 대해 분당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분당차병원 의료사고 진실게임-①] [단독] "엄마의 공백 하루 만에 사망"⋯'의료사' 의혹”)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던 올 1월 유족은 민영씨 사망 당일 새벽 인공호흡기에서 약 30분간 경보음이 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이 제시한 인공호흡기 ‘Trilogy(트릴로지) 100’ 로그기록에 따르면 민영씨가 사망 선고를 받은 날 오전 5시 31분부터 오전 5시 59분까지 11차례 경보음이 울린 것으로 확인됐다. 오전 6시 3분 의료진이 경보음을 끄기 직전까지 약 28~32분간 계속 울린 것이다.
 
이에 대해 유족은 환자 상태가 악화하고 있다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의료진이 이를 뒤늦게 발견한 것도 모자라 아무 문제 없던 환자가 갑자기 위급해진 것처럼 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민영씨 부친은 “간호기록지에 따르면 의료진이 당일 새벽 5시 57분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직전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환자가 갑자기 호흡정지가 발생한 것처럼 기록했다”며 “하지만 로그기록을 보면 이미 기도 폐색이 발생했고(오전 5시 31분), 이 상태로 약 30분이나 경과돼 응급 조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이런 유족 측 주장에 대해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 경보음이 울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의료진이 환자 기도에서 가래를 제거하기 위해 호흡기를 분리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영씨 부친은 “로그기록을 증거로 제시하기 전까지는 경보음이 울린 적 없다던 의료진이 증거를 들이밀자 갑자기 석션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며 “주치의가 석션 이야기를 꺼낸 후 간호사들도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족은 30여 분간 인공호흡기 경보음이 울린 것에 대해 석션을 했기 때문이라는 병원 측 주장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민영씨 모친은 “병원 측 말대로 석션 때문에 호흡기가 그렇게 오랫동안 분리됐다면 이는 고의적인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며 “호흡기에 의존하는 중증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30분 떼어버리면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건강한 사람이 30분간 숨을 참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모친은 “무엇보다 석션은 그때(인공호흡기 경보음이 울린 시간) 한 것이 아니라 오전 6시 이후 심각성을 발견한 이후 심폐소생술을 하는 단계에서 호스로 했다”며 “얼마나 무리하게 했으면 폐에 있는 피까지 밖으로 다 빼내 옷이 피로 흥건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민영씨 사망 원인 중 한 가지가 응급 조치 골든타임을 놓친 데 있다는 유족 측 주장에 대해 병원 측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차병원 관계자는 “현재 민사소송과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며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유족 측은 골든타임을 놓친 응급 조치와 장시간 석션을 하지 않은 것([분당차병원 의료사고 진실게임-③] 합병증 vs 질식사⋯동일 부검, 다른 해석), 1차 뇌종양 수술에서 발생한 사고([분당차병원 의료사고 진실게임-④] 수술기록 '축소·은폐' 의혹 대립) 등을 민영씨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