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칩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 반도체 대기업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가 ‘비용 절감’을 무기로 내세우며 AI 칩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엔비디아 제품보다 저렴한 AI 칩을 통해 AI 프로그램 개발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AMD는 13일(현지시간) 최첨단 AI GPU(그래픽처리장치) ‘MI300X’를 공개했다. 오는 3분기부터 소량 생산을 시작한 후 4분기부터 대량 생산에 나선다.
 
GPU는 챗GPT 같은 최첨단 AI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 사용되는 칩이다. 현재 전 세계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80%를 넘는다. 사실상 엔비디아가 독점하는 구조다.
 
MI300X 칩은 대형 언어 모델(LLM)을 포함한 최첨단 AI 모델을 위해 설계됐다. AMD는 이날 열린 제품 발표회에서 자사의 새로운 칩을 통해 AI 프로그램 개발에 드는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MI300X 칩은 최대 192GB의 메모리를 탑재했다. AMD 측 주장대로면 경쟁 제품인 엔비디아 H100의 120GB 메모리를 능가한다. 칩 1개당 메모리를 늘리면 AI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되는 GPU 개수를 줄일 수 있다. 이는 물론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오픈AI가 챗GPT를 훈련하는 데 사용한 GPU는 약 1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용되는 칩 수가 줄고 칩 가격도 함께 낮아지면 AI 프로그램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다소 낮출 수 있다. AI 시장에 진입하는 게 비교적 수월해지는 것이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LLM의 중심에는 GPU가 있고, GPU는 생성 AI를 가능하게 한다”며 “MI300X 칩은 엔비디아 H100 대비 2.4배의 메모리 밀도와 1.6배 이상의 대역폭(bandwidth)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회사의 "가장 크고 전략적인 장기 성장 기회"라며 "LLM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를 실행하려면 GPU 여러 개가 필요하지만 AMD 칩에서는 많은 GPU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MD는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에서 미국 인텔 점유율을 빼앗는 식으로 성장해 왔다. 앞으로는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GPU 시장에 본격 진출해 점유율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AMD는 AI 칩 시장 규모가 올해 300억 달러(약 38조3000억원)에서 2027년에는 5배인 15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AMD가 자신 있게 신제품을 선보였지만 회사 주가는 이날 뉴욕 증시에서 3.6%나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은 “AMD가 이번 발표에서 월가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빠뜨렸다”며 “그것은 바로 ‘누가 제품을 살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AMD는 통상 새 제품을 공개할 때 주요 고객을 함께 밝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하물며 AMD는 칩 판매 전략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제공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가 AMD의 새로운 AI 칩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으나 아직 확실하진 않다.
 
반면 엔비디아 주가는 3.9% 오르며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반도체 제조업체가 시총 1조 달러를 넘긴 것은 엔비디아가 최초다.
 
엔비디아에 제대로 맞설 경쟁자가 현재로서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인텔과 세레브라스 시스템스(Cerebras Systems), 삼바노바 시스템스(SambaNova Systems) 등 여러 스타트업들이 경쟁 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나 엔비디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구글과 아마존의 자체 AI 칩 개발 정도가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아직은 엔비디아가 우위에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