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된 넥슨표 블록체인 신사업…P2E 선 긋고 메이플스토리 NFT 집중
2023-05-28 06:00
기존 자금 두 배 달해...넥슨표 NFT 활성화 기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18일 넥슨코리아 이사회는 계열사 넥슨블록에 주주배정증자 방식으로 40억원을 투자하는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넥슨블록은 넥슨코리아의 유상증자 참여로 2만주(주당 20만원)를 증자하고 이후 넥슨코리아가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다고 지난 24일 공시했다. 넥슨블록은 이전부터 넥슨코리아의 100% 자회사였기 때문에 이번 투자에 따른 지배구조 변화는 없다.
지난 4월 12일 공시된 넥슨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넥슨블록은 넥슨코리아의 100% 자회사로 작년에 설립된 국내 법인이다. 결산월(2022년 12월) 기준으로 넥슨코리아는 넥슨블록에 20억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넥슨코리아 이사회가 이달 유상증자 참여로 단행하는 추가 투자 액수인 40억원은 기존 두 배에 달한다. 이미 완전 자회사인 넥슨블록에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이 회사 프로젝트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넥슨블록 대표이사로서 이 회사를 이끄는 인물은 강대현 넥슨코리아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블록체인 사업총괄 부사장이다. 강 COO는 2004년 넥슨코리아에 입사해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개발 리더를 거쳐 라이브게임 총괄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주요 라이브 프로젝트의 성장을 이끌었고 2017년부터 넥슨 인텔리전스랩을 통해 인공지능 관련 신기술 개발을 지휘한 인물이다.
게임 업계에 따르면 강 COO는 2020년부터 넥슨의 블록체인 기반 신규 프로젝트 총괄을 함께 맡고 있고, 넥슨의 NFT 기반 생태계 청사진을 최초로 공개한 2022년 6월 넥슨개발자콘퍼런스(NDC)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당시 강 COO는 블록체인 기술 특성과 이에 적합한 게임 설계 방법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구상을 제시하고 메이플스토리 IP를 활용한 NFT 생태계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게임 내 캐릭터나 아이템을 소재로 삼은 NFT를 발행하고 이용자가 이를 자유롭게 유통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생태계로 요약된다. 이는 메이플스토리 IP를 소유한 넥슨에 NFT 발행과 거래를 위한 주요 권리가 종속된 폐쇄적 생태계가 될 수 있다. 넥슨은 이 환경에서 다른 NFT 프로젝트와 연동을 지원하고 글로벌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올해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글로벌 게임 개발자 행사 ‘게임 디벨로퍼스 콘퍼런스(GDC) 2023’에서는 황선영 전 넥슨 메이플스토리 디렉터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프로젝트 총괄 그룹장 자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블록체인 기술 결합을 주제로 한 이 강연에서 게임에 적용된 블록체인 기술이 이용자 경험과 재미를 향상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넥슨은 게임 IP와 블록체인을 연계한 신사업 모델 가운데 NFT를 활용하는 데 집중한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MMORPG 핵심 요소인 ‘사냥’이나 ‘퀘스트’ 등 플레이를 통해 획득한 NFT를 이용자 간 자유롭게 거래하는 환경으로 구축하고, 이를 연계한 PC 게임 신작 ‘메이플스토리 N’을 세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게임 밖에서 획득·처분할 수 있는 암호화폐(코인)를 접목한 ‘즐기면서 돈 버는(P2E) 게임’ 사업과 거리를 두고 있다.
작년부터 국내에서 블록체인 기반 P2E 게임 합법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국내에서 P2E 게임 서비스는 불법으로 규정된다. 이 사업을 전개하는 한국 게임사는 공식적으로 해외 시장에서만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최근 산업계와 정치권 사이 P2E 합법화 논의 과정에 ‘입법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어서, 앞으로도 국내 게임사가 한국 시장에 P2E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당분간 불가능하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N에 기존 주력 수익모델인 ‘캐시숍’을 두지 않기로 했다. 현금을 지불한 이용자에게 플레이에 유리한 아이템을 즉시 제공하는 방식을 포기했다. 이용자는 캐시숍 대신 게임 플레이로 아이템을 획득해야 한다. 이용자는 아이템을 NFT화하고 다른 이용자와 NFT를 거래함으로써 게임 속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일원이 된다. NFT 거래에는 수수료가 있는데, 이는 생태계에 기여한 이용자와 넥슨에 보상으로 분배된다.
향후 외부 개발자가 넥슨 게임 관련 NFT뿐 아니라 외부 NFT를 활용해 PC와 모바일 플랫폼을 넘나드는 자신만의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블록체인 게임 제작 플랫폼 ‘모드(MOD) N’도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생태계의 한 축이 된다. 넥슨은 모드 N으로 개발된 게임의 인기를 기준으로 생태계 기여도를 측정하고 이 또한 보상할 예정이다. 이 밖에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NFT를 이용한 별도 모바일 앱 개발 도구 등을 생태계에 추가한다.
넥슨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P2E 게임이나 암호화폐 거래를 전제로 한 서비스 대신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처럼 게임 IP를 이용한 NFT 생태계 조성에 방점을 두는 것은 고(故) 김정주 창업자의 별세 전후로 확 달라진 넥슨그룹의 블록체인 신사업 방향성을 시사한다. 김 창업자 생전 넥슨은 지주사 엔엑스씨(NXC)를 통해 2020년 3월 계열사 ‘아퀴스코리아’를 세우고 2021년 블록체인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아퀴스코리아 출범부터 청산까지 2년 남짓한 전체 운영 기간 주요 의사결정에 김 창업자 의지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 창업자가 엔엑스씨 대표로 재직할 동안, 아퀴스코리아는 엔엑스씨가 참여한 유상증자를 여러 차례 진행해 수백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수십억원 상당 비트코인을 웨이브릿지(핀테크 스타트업)와 스트리미(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 운영사)에서 인수해 법인 운영 종료 전까지 보유하기도 했다.
아퀴스코리아는 당초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김 창업자 별세 직후인 2022년 3월 말부터 법인 청산 절차를 밟았다. 엔엑스씨에 따르면 아퀴스코리아 운영 종료 자체는 김 창업자 별세 전 결정됐다. 김 창업자가 생전에 그룹의 블록체인 관련 신사업 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하면서 IP를 연계한 NFT 생태계 투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방향 전환을 위해 암호화폐와 밀접한 아퀴스코리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