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한미동맹 70주년,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

2023-05-25 06:00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고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은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 동맹 70주년이라는 말은 1953년 7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지 70년 되었다는 말이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 결과로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를 분명히 한 ‘워싱턴 선언’이 채택되었고 이 선언을 ‘제2 상호방위조약’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기존의 방위조약이 재래식 공격을 상정한 것이라면 ‘워싱턴 선언’은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방어 의지를 선언한 것이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문을 보면 양국 간 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하여 동맹의 적용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양국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여러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를 강화하고 첨단 기술 분야와 공급망 재편에서 협력을 확대할 것을 천명하였다. 한·미 동맹이 단순한 양국 간 안보동맹에서 지역동맹, 기술동맹으로 진화하는 미래상을 공동성명이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기존의 국제 체제와 질서의 밑그림이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제 정세가 급격히 변해가는 대변환 시대를 맞아 한·미 동맹도 이에 발맞추어 진화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래 한·미 동맹의 윤곽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해야 하지만 우리 국익에도 잘 부합하게 진화시켜 나갈지에 대해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던 1953년 당시 상황 논리와 그 이후 이어지는 우리 정부들의 방위조약 강화 노력들을 짚어보고 이런 노력들이 시사하는 바를 앞으로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미국은 상황을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선에서 휴전하려고 공산 측과 협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이루지도 못한 채 휴전만 하고 미군이 떠나 버리면 한국의 안전은 풍전등화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휴전에 앞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고서는 휴전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조속한 휴전을 원하는 미국이 다양한 회유와 압박을 가했음에도 이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 체결 외에 한국군 증강, 상당한 경제 원조 등 다양한 요구를 휴전과 맞바꾸려 하였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안보 구도가 불안한 채로 휴전을 맞느니 한국군이라도 유엔군 작전지휘권에서 벗어나 단독 북진을 하겠다는 엄포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이 대통령의 일탈을 두려워하여 미국은 이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계획(에버레디 플랜)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1953년 6월 이 대통령이 기습적인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두자 미국 측은 이 계획을 실제 집행할 뻔했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벼량 끝 전술을 쓴 것은 오로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상호방위조약을 휴전하기 전에 체결해야 한다는 냉철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이런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군 지도부들은 양국 간 방위조약 체결에 부정적이었고 특히 이 대통령이 요구하는 자동개입 조항 삽입은 절대 안 된다는 태도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월남 파병을 해주는 대가로 자동개입 조항을 확보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미군이 이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는 휴전 후 남북한 간 충돌로 인해 미국이 전쟁에 다시 연루될 가능성도 염려하였지만 동아시아 안보 구도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전 초기에 목도하였듯이 한국은 방어종심이 짧아 적시에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 이유였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이 다시 침략받으면 유엔 16개국이 재참전한다는 선언 정도만 한국 측에 약속해주고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이러한 미군 측 견해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무부가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불가피하고 그 시기는 휴전 이후로 한다는 방침을 정하는 바람에 결국 휴전 후 3개월 뒤에 한·미 동맹이 출범하게 된다.
 
한·미 동맹 성립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미국의 전쟁 지도부가 생각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은 20세기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방파제 정도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반도가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고 보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최근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남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의 국가전략에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기본 국가전략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트럼프와 같은 유형의 대통령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하여 한·미 동맹을 더욱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강화해 놓아야 한다. 즉 이 대통령이 방위조약을 강력히 요구한 것은 미국이 향후 한국을 내버릴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인데 미국 기본 전략구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완전한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 구도를 완성시키고 일본에 더 많은 안보 부담을 지게 한 다음 미국의 안보 부담은 줄이려 하는 구상을 늘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한·미 동맹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줄기차게 시도하였던 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 조항 삽입과 같은 동맹 강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이 유사시에 한국 방어를 위해서 미국의 헌법적인 절차에 따라 필요한 승인을 다 거치지 않고도 즉각적으로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존재 자체가 인계철선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군의 평택기지 이전으로 인해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미국이 아시아판 NATO를 만들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면 아시아 국가들에도 NATO 회원국과 같은 집단안보 공약이나 핵공유 정책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런 성의를 보일 때 우리도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한·미 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적용 범위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 상호방위조약에도 미국이 관할하는 태평양상 영토가 공격을 받았을 때 우리가 지원해야 할 의무가 명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한·미 동맹이 대북 억지용이고 한반도에만 적용된다고 믿고 있기에 실제 우리 군이 지역동맹 활동을 수행하려면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우리 배후 안보를 더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한·미 동맹의 적용 범위를 한반도 이남으로 확대하려면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비책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채택된 ‘워싱턴 선언’도 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는 담고 있으나 미국의 핵우산 사용은 결국 미국 측 결정에 달려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유사시에 한·미 간 협의를 하긴 하지만 북한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체제가 가동되기는 힘든 구조다. 이 선언도 앞으로 양국 간 협의를 거쳐 더욱 즉각적인 실행력이 담보되는 방향으로 문서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아니면 선언은 결국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늘 있는 것이다. 미래 동맹, 글로벌 동맹의 방향성은 맞지만 우리 안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위해 줄기차게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잘 안 되자 우리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독자적인 행동에 착수하기도 하여 미국의 견제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익, 특히 국가안보에 하나의 빈틈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 보수 정부가 지켜야 할 본분이 아닌가 한다. 1950년대 미국의 최강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미국의 핵우산을 완전히 믿지 못하여 미국의 핵우산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을 갔다. 우리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을 미리 고민해야 할 때다. 케네디 대통령 말처럼 내치에 실패하면 선거를 잃지만 외교에 실패하면 나라를 잃는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