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시행 임박] 338조원 퇴직연금, '영점조정' 마치고 금융권 드라이브

2023-05-24 00:05
은행·증권·보험 금융업권 '고객모시기' 경쟁 돌입
DC형·개인형 IRP 적극적 운용으로 수익률 개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오는 7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300조원이 넘는 만큼 금융권에서는 새로운 사업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만큼 제도 자체는 연착륙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업권 간 ‘고객모시기’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안정성은 은행·수익률은 증권사… 머니무브 가능성도
 
23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현재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총 338조원으로 집계됐다. 적립금 규모는 은행 174조9013억원, 증권사 76조8838억원, 보험사 86조5809억원 등이다.
 
퇴직연금이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라는 점에서 은행과 보험에 자금이 몰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디폴트옵션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증권사로의 대규모 머니무브(자금이동)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 1분기 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확정급여형(DB) 2.43%, 확정기여형(DC) 2.45%, 개인형 IRP 2.24%로 집계됐다. 초대형 투자은행(IB)인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 3곳의 평균 수익률은 DB형 2.81%, DC형 2.86%, 개인형 IRP 2.88% 등이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은행보다 최대 0.64%포인트(p) 높다.
 
퇴직연금 특성상 적립금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누적 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간이 지날수록 수익률에 따라 받게 되는 연금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이에 안정성뿐만 아니라 수익률도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높은 수익률을 앞세운 증권사의 시장점유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 1분기 적립금 기준 시장점유율은 은행 51.69%, 증권 22.72%, 보험 25.59% 등이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은 지난해보다 2.7%포인트 증가한 반면 은행과 보험사는 각각 0.1%포인트, 2.6%포인트 감소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자체가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증권사의 높은 퇴직연금 수익률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은행에서도 최근 고수익 퇴직연금 상품을 출시하거나 개발 중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잠들었던 퇴직연금… 수익률로 돌려준다
 
퇴직연금은 DB형, DC형, 개인형 IRP 등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디폴트옵션은 DC형 개인형 IRP 가입자에게 해당된다. 기존에 가입자가 제대로 운용하지 않아 묶여있던 퇴직연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운용해 좀 더 나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보면 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우리나라 퇴직연금 중 DC형의 연평균 수익률은 2.4%를 기록했다. 기존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타 국가의 평균 수익률은 △영국 9.8% △호주 8.0% △미국 7.4% 등에 비해 5%포인트 이상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다.
 
가입자가 따로 운용지시를 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사전에 결정한 운용 방법을 통해 상품을 자동으로 선정해 운용한다. 이에 금융회사의 운용 능력이 퇴직연금 사업자를 고르게 되는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활용도… “안전하거나 공격적이거나”
 
디폴트옵션이 시행되면 퇴직연금 가입자가 해야 할 건 크게 없다. 새로 퇴직연금에 가입한 경우 첫 부담금을 납부하고 2주가 지난 뒤 운용지시를 하지 않거나 기존 금융상품의 만기가 도래한 경우 6주간 운용지시가 없을 때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 디폴트옵션이 적용되기 전에는 현금성 자산으로 남아 낮은 금리가 적용된다.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하더라도 ‘옵트인(opt-in)’으로 디폴트옵션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유형의 일반 퇴직연금 상품과 디폴트옵션 상품을 비교했을 때 금리가 높거나 수수료가 더 저렴한 경우 디폴트옵션 상품을 직접 매수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디폴트옵션 상품 하나만 가입할 수 있다.
 
디폴트옵션이 적용된 경우에도 가입자가 원하면 다른 금융상품으로 갈아타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으로도 운용할 수 있다.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정해놓지 않는 디폴트옵션 특성을 활용하면 투자성향에 따라 공격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적립금 70%를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30%를 정기예금에 맡긴 A씨는 디폴트옵션으로 주식편입 비중이 40%를 초과하는 고위험 상품을 선택했다. 이때 A씨가 만기가 도래한 금액을 디폴트옵션에 재투자하게 되면 추가적으로 고위험자산을 매수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디폴트옵션이 적용되면 가입자의 적립금 운용 폭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사업자의 경우 초저위험(은행예금·국고채 등) 1개,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각 2~3개 등 최소 7개에서 최대 10개의 상품 또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아 가입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디폴트옵션은 개별상품 위험 등급 또는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상품별 위험등급을 가중평균한 위험도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초고위험 등 5종류로 나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인의 재테크를 통한 투자수준이 높아졌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도 타 선진국에 못지 않게 활성화될 것”이라며 “본인 투자성향에 맞게 디폴트옵션을 활용해 행복한 노후생활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