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탄소배출 공시 시대 코앞 …'저탄소 코리아' 길찾자

2023-05-23 06:00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정부는 지난 3월에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40%)를 달성하기 위한 부문별 목표의 조정 내용이 포함됐다. 전환 부분의 감축 목표치를 종전의 44.4%에서 45.9%로 소폭 상향한 반면 산업은 14.5%에서 11.4%로 3.1%포인트 내린 게 특징이다. 정부는 “산업 부문은 원료 수급, 기술 전망 등 현실적인 국내 여건을 고려하여 감축목표를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정책의 선회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내외 여건이 이런 시나리오가 먹혀들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인다면야 만사 ‘OK’다.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도 돼 소프트랜딩의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확정한데다 글로벌 차원에서 기업의 탄소 배출 공시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본격적인 시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EU로 가보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고 있는 EU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에 대비해 55% 줄이기로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안 패키지 ‘핏포 55(Fit for 55)’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다. 이 제도는 환경규제가 약한 외국에서 생산된 수입 제품에 대해 EU 제품보다 탄소배출 비용을 적게 지불한 만큼 관세 형태의 탄소 가격을 물리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차이만큼 수입 제품에 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해 금전적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EU 기업이 탄소 규제가 약한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은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느라 원가가 높아졌는데 다른 나라의 고탄소 제품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수입되는 불공정 무역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CBAM과 관련해 지난해 말부터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져 왔다. 그동안 EU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유럽의회는 각자의 안을 내놓았는데 지난해 말 최종 입법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최근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이를 공식 승인했다. 핵심 내용을 보면, 올해 10월부터 2025년까지의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본격 시행하는 것으로 일정이 확정됐다. 전환 기간에 대상 업체들은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면 된다. CBAM 인증서 구매는 2026년부터 의무화된다. 대상 품목은 당초 집행위와 이사회는 5개, 유럽의회는 9개를 주장했으나 결국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6개 제품으로 결정됐다. 다만, 과도 기간에 플라스틱과 유기화학품 등을 추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탄소 배출량에는 생산공정에서의 직접 배출량과 외부에서 사들인 열과 전기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 포함됐다.
 
CBAM은 국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비상이 걸린 곳은 철강업종이다. 우리나라는 대(對)EU 5위 철강 수출국으로 그 규모가 43억 달러(2021년)에 이르고 있다. 철강업은 탄소를 많이 내뿜는 업종인 만큼 CBAM 구매 부담이 생기면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환 기간 중 수소환원제철과 CCUS(탄소포집·이용·저장) 기술 등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여야 하는 일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알루미늄의 경우 연간 수출량이 5억 달러로 철강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투입재인 잉곳의 생산공정이 탄소를 많이 배출해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나머지 비료, 시멘트, 전력, 수소 4개 품목은 수출이 적거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CBAM의 여파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EU가 앞으로 플라스틱이나 유기화학품 등을 대상에 추가하면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EU 수출물량이 플라스틱은 철강보다 많은 연간 50억 달러, 유기화학물은 18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CBAM은 탄소 배출이 무역장벽화하고 있는 사례이다.
 
탄소 배출 감축 부담을 가져오는 대내외 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들은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RE100에 가입하고 있다. 현재 157개 국내 기업이 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목표 시점은 2025년부터 2050년까지 다양하다. 기업은 자발적으로 RE100에 가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무대해서 사업을 하려면 ‘꼭 입어야 하는 드레스코드’ 같은 ‘사적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 탓이 크다. 앞으로 RE100에 대한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는 기업들이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활용을 크게 줄여나가야 함을 시사한다.
 
여기에다 기업 공시의 큰 판을 바꾸는 제도적 변화가 임박한 상태다. 기후공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탄소배출 공시안이 이미 시행에 들어갔거나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은 크게 스코프 1, 스코프 2, 스코프 3 등 세 가지 통로를 통해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스코프 1은 기업이 소유·통제하고 있는 공장 등 시설에서 발생하는 직접적 배출이다. 스코프 2는 기업이 구매하는 전기와 동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말한다. 스코프 3는 협력업체는 물론 물류, 제품의 사용과 폐기 등 기업 외부에서의 간접적 배출량이다. 스코프 3는 측정과 관리가 어려워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탄소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스코프 3를 빼고 기후공시를 하자는 것은 ‘알맹이’를 없애자는 얘기와 다름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지속가능 및 기후공시 제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역시 EU다. EU는 지난 1월부터 이미 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을 시행하고 있다. 5000개 EU 역내외 기업에 적용되는 CSRD는 스코프 1, 2, 3 모두의 탄소 배출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기업이 기후에 주는 영향도 알리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이중중대성 원칙이다. CSRD는 2024년부터 2029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기후공시안도 확정을 앞두고 있다. 이 작업을 맡고 있는 기관은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인데 6월 말에 최종안을 공표한 다음 이를 내년 1월부터 발효하겠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ISSB안 또한 스코프 1, 2, 3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협력업체들의 자료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스코프 3는 시행 시기를 1년 늦추기로 했다. ISSB안은 최종안이 나오면 비교적 빠른 속도로 각국이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G7과 G20, 국제증권관리위원회와 40개국 이상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 SEC는 지난해 3월 상장사의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대상은 EU와 ISSB의 방안과 동일하게 스코프 1, 2, 3를 포괄하고 있다. 다만, 스코프 3는 상장사에 ‘중요한’ 경우, 그리고 상장사가 스코프 3를 포함한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이 안을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인데 공화당과 일부 기업이 반발하고 있어 스코프 3 공시안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SEC안도 올해 안에 확정되고 2024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기후공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오는 2025년에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인 정부도 글로벌 제도화의 흐름을 고려해 기후공시부터 관련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내년부터 ISSB안이 시행되면 우리나라도 도입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EU의 CSRD와 미국 SEC안은 현지에 진출한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기업은 적용 대상이 된다. 또 미국과 EU 기업의 공급망에 들어있는 기업도 이를 우회할 수 없다. 문제는 스코프 3 탄소 배출이다. 대다수 기업이 이를 공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준비가 부진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일이 글로벌 대명제가 된 상태에서 기업 전 영역에서의 탄소 배출을 공시하는 것은 세계적인 공감대가 모아진 실행 과제이다. 전면적 기후 공시가 기업 경영환경의 ‘뉴노멀’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후공시는 개별 기업의 탄소 배출 ‘성적표’가 드러나는 것과 함께 매년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이고 있는지에 대해 시장의 감시체제가 가동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탄소 배출 감축은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힘겨운 과제라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국가의 탄소감축 목표와 관련한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방심하면 수출시장에서 그리고 공시제도가 가동되는 금융 및 자본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다행히 탄소중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인식하는 기업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 기업가정신이 주도하는 ‘탄소 혁신’에 기대를 걸어본다. 아울러 정부가 화학, 철강, 시멘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등 4대 탄소 다배출 업종의 탄소중립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만큼 민관의 공조가 ‘저탄소 코리아’로 가는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