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카메라 전멸' 되풀이할라…日 전기차 전환 박차

2023-04-19 09:33
아시아 비즈니스 리뷰
가격 경쟁, 공급망 구축에 성공 여부 달려
미국 시장도 깜깜…목표만 있고 방법은 없어

지난 4월 18일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된 도요타 Bz 스포츠 크로스오버(오른쪽)와 Bz 플렉스 스페이스 [사진=EPA·연합뉴스]




“앞으로 중국 전용 전기차 개발을 강력 추진하겠다.” 지난 18일 개막한 ‘2023 상하이 국제 모터쇼’에서 일본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전기차 신모델 2종을 공개했다. 
 
도요타는 2026년까지 전기차 신모델 10종을 출시해, 연간 전기차 판매량을 150만대로 늘리는 게 목표다. 도요타는 지난해 전기차를 약 2만4000대 팔았다. 앞으로 4년 안에 판매량을 60배 이상 늘리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의구심이 짙다. 도요타가 세계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10%에 달하지만, 전기차 점유율은 1%도 안 된다. 일본 내부에서는 ‘디지털카메라에 순식간에 몰려난 필름업계의 운명’이란 비관론이 상당하다. 150만대 판매를 자신 있게 제시했지만, 이를 이룰 전략은 보이지 않아서다.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가 전기차 시장에 대한 지배력 굳히기에 나선 가운데 전기차 후발주자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두각을 드러낼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중국 공급망 구축에 성공 여부 달려 
도요타는 지난해 스바루와 공동 개발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bZ4X'로 중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비야디와 함께 개발한 세단 ‘bZ3’의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이다. 지난해 전기차가 536만대나 팔렸다. 전체 신차 판매 가운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신에너지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했다.

올해는 신차 판매량 2760만대 가운데 신에너지차(900만대) 비중이 약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 3대 중 1대가 전기차인 셈이다. 연내 1000만대 판매가 가능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일본은 중국과는 딴판이다. 전기차 불모지다. 지난해 일본에서 팔린 전기차(경차 포함)는 7만7238대에 그쳤다. 전체 승용차 판매의 2.1%다. 특히 선진국 가운데 성장 속도가 유독 느리다. 미국에서 지난해 팔린 전기차(승용차, 소형 트럭)는 81만대로 점유율이 6%였다. 유럽 주요 18개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153만대로 점유율이 15%를 기록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동차산업 분석기업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 회사의 중국 전기차 시장 판매 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테슬라가 불 지핀 가격 인하 전쟁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겟층을 중산층으로 설정하고 집중 공략에 나서란 것이다.

고급차와 저가차로 양극화됐던 전기차 시장에서 중간 가격 차종이 늘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가격을 저가(100만엔 이하), 중가(200~300만엔), 고가(400~600만엔) 등 3개 가격대로 나눴다. 눈여겨볼 점은 200~300만엔 가격대 차량의 판매 비중이 2021년 23%에서 올해 1분기 37%까지 늘었다는 점이다. 100~400만엔대 차량으로 수요가 몰리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중간 가격대를 노리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다만, 공급망이 걸림돌이다. 비야디는 배터리, 반도체까지 모두 자체 생산해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산업에서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탄탄한 공급망 덕에 차량 가격을 수월하게 낮출 수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가격 인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 현지 회사들과 협력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앨릭스 파트너스의 스즈키 도모유키 매니징디렉터는 "중국 업체들이 배터리나 부품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 가운데 일본 회사가 이들 업체들과 얼마나 협업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회사가 일본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비야디가 지난 1월 일본에서 출시한 소형 SUV 전기차 ‘아토3’(ATTO3)의 가격은 440만엔으로 1회 충전에 485km를 달릴 수 있다. 닛산의 주력 전기차 ‘리프’를 능가한다.
 
미국 시장도 깜깜…목표만 있고 방법은 없어

미국 시장에서도 앞이 깜깜하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주력 시장인 북미에서도 공급망을 재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가솔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북미 시장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한참 뒤처진 전기차 부문을 빨리 따라 잡지 않는다면 북미 시장을 한순간에 잃을 처지다.
 
영국 리서치업체 LMC오토모티브에 따르면 도요타·혼다 등 일본 빅 5 자동차 회사의 북미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441만대다. 이 가운데 전기차 비율은 0.4%에 불과하다.
 
이들 빅5는 2029년께 지난해 생산량의 60배에 달하는 전기차 95만대를 북미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2029년께 북미 전체 전기차 생산의 20%에 그친다. 미국과 유럽 회사들은 2029년까지 269만대에 달하는 전기차를 생산하는 게 목표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목표보다 3배 더 많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1980년대 미일 간 무역마찰 심화로 미국 현지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하이브리드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후 현상 유지에 몰두하며 전기차 전환을 간과했다.

그러나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7500달러에 달하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무기로 휘두르는 지금, 자동차 회사의 운명은 북미 공급망 구축에 달려 있다. 미국 정부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전기차 가운데 일본 회사의 모델은 전무하다.
 
더구나 미국은 강도 높은 ‘차량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통해 전기 자동차 신차 판매 비중을 지난해 6%에서 2032년까지 67%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3대 가운데 2대가 전기차가 되는 셈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부랴부랴 전기차 전환 목표를 제시했다. 도요타는 오는 2025년부터 SUV 전기차를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켄터키주의 공장을 개조해 2026년 연간 20만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도 갖춘다. 혼다는 2026년 판매를 목표로 오하이오주 메리스빌 공장의 2개 생산라인 가운데 1개를 개조했다. 닛산자동차는 오는 2026년에 전기차 신모델 4종을 생산할 방침이다. 마쓰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을 25~4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증가하는 개발비와 인건비는 각 기업의 숨통을 옥죌 수 있다. 도요타는 전기차 판매량이 늘더라도 이익으로 전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전기차 개발비로 인해 당분간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 미 자동차 회사 포드도 전기차 부문에 대한 투자 급증으로 인해 올해 전기차 사업 부문이 약 30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도요타는 신흥국에 하이브리드차를 적극 팔아 비용 증가에 대응하겠다는 셈법이다. 미야자키 요이치 도요타 부사장은 최근 판매와 관련해 "선진국에서는 변하지 않고 신흥국에서 늘린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