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반도체로 번지는 패권전쟁···新냉전시기에 살아남는 법

2023-04-19 05:55

냉전(冷戰)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1년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붕괴될 때까지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 분야에서 미·소 양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적인 경쟁과 대립 시기를 의미한다.

당시 지구상에는 미국 중심인 서방 진영과 소련 중심인 공산 진영이라는 적대적이고 상호 단절된 두 세계가 존재했다. 두 세계 사이엔 무역도 여행도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양 진영 사이에는 광범위한 무역 금지 조치가 당연한 것처럼 존재했다.

특히 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비교적 우위를 차지했던 서방 진영은 첨단 기술과 제품에 대해 대공산권 유출을 금지하기 위해 강력한 수출 통제를 시행했다. 만약 이를 어기고 공산 진영에 몰래 수출을 한다면 큰 이적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했다.

최근 냉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한 패권 경쟁에서 해당 시기 수출 금지 조치를 비장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금지 조치는 반도체 공급망 통제에서 우선적으로 점차 배터리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현시점에서 적성 국가인 중국이 경제·과학·기술 측면에서 더욱 발전하는 일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다만 외국 기업이 소유한 생산시설에 대해서는 개별 심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특히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해서는 1년 동안 미국 정부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장비를 수입할 수 있도록 유예 조치를 통보했다.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보조금 390억 달러(약 50조원)를 지급하는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하며 미국 정부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등 우려 대상국에 설비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넣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이 같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으로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이 진행하는 일련의 제재 조치에 대한 속도와 강도를 감안하면 조만간 냉전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에게는 미·중 간 새로운 냉전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넘길 수 없다.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반도체 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우리만 예외를 허용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반도체 경쟁에 핵심으로 파악하고 자국에 끌어들이려 압박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전략적 모호성'이나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한가로운 전략을 고수한다면 양쪽 모두에게 이적행위자로 판단될 가능성만 커지는 형국이다.

결국 신냉전 시기에도 활용할 수 있는 대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스스로의 실력'이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신냉전 시기에 강대국의 한마디에 운명이 뒤바뀌지 않을 만큼 경제·과학·기술의 체급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일부 대기업에 지나칠 정도로 편중된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약점을 보완해 무역 금지와 공급망 혼란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지원을 늘리고 그동안 다소 미진했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데 투자가 단행돼야 한다.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도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에 큰 영향을 남길 수밖에 없다. 과거 냉전 시기에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참화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해야 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단순히 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대전략이 필요한 때다.
 

윤동 산업부 차장
[사진=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