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 맞은 정지선號] 리뉴얼·신규 출점 승부수 通했다...공격 경영으로 위기 돌파
2023-04-13 18:00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팬데믹 이후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리뉴얼을 통해 백화점의 상식을 깨는 점포 구성을 도입하는가 하면 신규출점에도 적극 나섰다.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 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선 안정 후 성장'을 강조해온 이전까지와 확연히 다른 행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팬데믹부터 시작된 정지선 회장의 개혁 행보가 현대백화점그룹에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20조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6조원으로 2년 새 30%나 늘었다.
정 회장은 35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했다. 젊은 회장이지만 할아버지인 故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아버지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곁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그는 누구보다 신중했다. 무모한 도전보다 그룹의 안정에 방점을 찍어왔던 그간의 경영 방식에서도 정 회장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 메시지를 통해서도 변화의 의지를 다졌다.
그는 신년사에서 "글로벌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수요 둔화 등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지만, 고객 신뢰를 더욱 확고히 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르기보다 우리만의 성장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꼭대기만 보고 오르는 힘겨운 등산이 아니라 발 밑을 보고 걷다보니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신년사 메시지 역시 정주영 회장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경쟁자를 따돌리려 하기보다 새로운 길(신규 사업, 매장 리뉴얼)을 개척하고 발밑(소비자와 소비심리)을 살핀 결과는 팬데믹 중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정 회장의 묵묵하지만 뚝심있는 개혁의 시작은 백화점이다. 백화점이 가지고 있던 틀을 깬 '더현대 서울'은 "젊은 세대가 찾는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공간이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최초로 유리 천장으로 자연채광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매장 면적을 줄이고 곳곳에는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백화점에서 볼 수 없던 로컬 맛집들과 편집숍이 대거 입점했으며, 트렌드를 반영한 팝업 매장으로 MZ의 놀이터로 자리잡았다.
더현대 서울은 개장 첫 주말 100만명이 방문했다. 이 중 65%가 30대 이하 MZ세대다. 개점 2년 만에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없이 매출 1조원을 앞두고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정 회장은 더현대 서울의 성공 DNA를 다른 점포로 이식하고 있다.
1년간 리뉴얼 공사를 진행한 현대백화점 목동점의 별관은 최근 2030세대를 위한 전문관으로 재탄생했다. 패션, 아웃도어, F&B 등 227개 브랜드가 입점했고 이 중 38개 브랜드는 백화점에 처음 입점하는 브랜드로 채웠다.
지난해 12월에는 현대백화점 대구점을 '더현대 대구'로 새 단장했다. 상품 판매 공간인 매장 면적은 기존보다 15% 가까이 줄이고, 문화‧예술 관련 시설 면적만 약 1530평으로 기존보다 4배 이상 늘렸다. 상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화된 문화‧예술 콘텐츠로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이다.
지난달 25일 개점 100일을 맞은 더현대 대구의 MZ 전문관인 지하 1~2층의 경우 리뉴얼 이후 2030세대 고객이 72% 늘었다.
최근 정 회장이 공을 들이는 현대백화점그룹의 '더현대 광주'도 관광‧문화‧예술‧여가와 쇼핑을 융합한 문화 복합몰로 출점한다. 더현대 광주는 국내 리테일 최대 규모의 초대형 녹지 공간을 조성한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2600억원을 투자해 압구정본점‧판교점 등 핵심 점포를 중심으로 리뉴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상권 및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해 럭셔리 브랜드와 차별화된 문화 콘텐츠를 유치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정 회장은 그룹간 시너지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난해 5월 인수한 지누스와 현대리바트, 현대L&C가 협업을 통해 리빙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이지웰은 지난해 11월 인수한 벤디스와 협업해 임직원들의 식대를 지급하는 '식대 복지사업'을 도입, 직원 복지 강화에 나섰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기존 사업의 성장과 신규 사업 진출 측면에서 다양한 협력을 시도하면서 '비전 2030' 성장전략을 구현해 나갈 것"이라며 "동시에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재투자를 확대해 지속 성장이 가능한 경영 환경을 구축하고 미래 세대에는 희망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