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달랑 4명' 서울대 학군단 미달 사태..."이러다 전국 ROTC 다 죽어"

2023-04-12 18:33
지난해 육군 ROTC 지원자 수, 2018년 대비 40%p↓
병사보다 낮은 월급·특채 전형 감소...청년 관심 하락
軍전문가 "급여·복지·주거 등 향상된 조건 제시해야"

2023년 육·해·공군·해병대 학군장교 임관식 [사진=연합뉴스]

'정예장교 육성, 미래인재 양성의 산실'이라는 학군단(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지원자 급감으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빚어지는가 하면 지방 대학을 중심으로 실제 학군단이 폐지되는 곳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장교 임관 후 지급되는 임금이 턱 없이 부족한 데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200만원 병사월급' 추진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13일 아주경제가 입수한 ‘2023년 서울대 학군단 지원 현황’에 따르면 올해 1학년 학군단 모집 정원 8명 가운데 지원자는 4명에 불과, 미달 사태를 빚었다. 

서울대는 통상 1학년과 2학년으로 나눠 학군단을 모집하는데, 2학년의 경우 올해 평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1학년은 유독 지원율이 떨어진 것이다. 

서울대 학군단 충원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학군단 지원자 수는 총 24명으로, 통상 서울대는 학군단 모집 지원자가 30명 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지원자가 줄었고, 1학년은 단 4명에 그치는 상황을 맞았다.

학군단 지원자 감소는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지역 대학을 비롯한 전국 대다수 4년제 대학이 학군단 충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규모 미달사태를 맞고 있어서다. 일례로 춘천교대의 경우 지난 2021년 지원율 감소로 학군단이 폐지됐다. 1992년 학군단이 생긴 지 28년 만의 일이다. 

학군단 지원 경쟁률 역시 떨어지고 있다. 2014년 전국 평균 6.1대1이던 경쟁률은 △2015년 4.5대1 △2018년 3.4대1 △2020년 2.7대1로 해마다 줄더니 지난해 2.6대1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학군장교 지원자 수, 2018년 대비 40%p↓
학군단 축소는 상위 군사교육기관인 육군학생군사학교(ROTC·학사장교 포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전국 학군사관 지원자 수는 7600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2020년(74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2018년 1만2600명과 비교하면 지원자 규모는 40%가량 급감했다.

지원자가 대폭 줄면서 학군 장교로 임관하는 규모도 현저히 줄고 있다. 지난해 학군장교 임관자는 3561명으로, 2018년(4111명)에 비해 550명 감소했다.

임관자 감소 현상은 서울과 지역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발생했다. 고려대는 2020년 모두 33명이 임관했지만, 올해는 20명으로 줄었다. 가톨릭대도 같은 기간 9명이 줄은 20명에 그쳤고, 부산대는 9명, 원광대는 6명 감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병사 월급 200만원으로 인상과 학군사관 등 단기복무장교의 복무기간 단축 등을 담은 국방 공약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병사보다 낮은 월급·특채전형 축소..."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학군단"
학군단 지원 감소는 군 간부 처우 및 위상 하락에 따른 청년들의 관심도 하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단적으로 최근 큰 폭으로 오른 사병 월급이 학군단 경쟁력 하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병장 월급은 지난해 67만원에서 49% 상승한 100만원이다. 국방부 방침에 따라 오는 2024년에는 125만원, 2025년에는 150만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여기에 부대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2025년 병장 월급은 200만원이 된다.

반면 초급장교 임금 인상률은 병장 월급 인상 폭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올해 초급장교 월급은 지난해보다 3만원 정도 오른 1.7% 인상에 그쳤다. 실제 학군사관으로 임관한 초급장교(1호봉) 월급은 178만원이다. 올해 기준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 201만원과 비교해도 13%p 적다.

여기에 학군단 장점으로 꼽혔던 특채 전형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전까지는 학군사관 전역 후 각종 기업 특채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극심한 취업난 등에 떠밀려 장교 특채를 유지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학군사관 출신이 취업 시장에서 혜택을 보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여기에 일반 사병보다 복무 기간이 10개월 더 길다 보니 오히려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현직 장교 A씨의 급여 내역. 중위 2호봉인 A씨는 실수령액 185만원을 받고 있다. 장기복무를 희망했으나 올해 전역하는 A씨는 자신의 전역 선택 중 가장 큰 부분이 급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제보자 A씨]

현직 장교 A씨 "내가 이러려고 학군단을 택했나. 참담한 심정"
이 같은 상황은 올해 7월 전역을 앞둔 현직 장교 A씨의 사례만 봐도 여실히 알 수 있다. 현재 중위 2호봉으로 월급 185만원을 받고 있는 A씨는 "급여가 너무 적어 장기복무를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2025년이면 병장은 정부 지원금 50만원을 합쳐 200만원을 받는다고 하던데, 장교인 내 월급은 고작 180만원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A씨는 청년들이 학군사관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로 장교들의 낮은 '워라밸(일과 삶 균형)'과 비현실적인 주거 여건을 꼽았다.

A씨는 "자대에서 장기복무 희망자로 분류된 순간부터 소위 '헬보직(어려운 보직)'을 맡는데, 출근 시간보다 최소 1~2시간 일찍 나와서 준비해야 하고 칼퇴근은 꿈도 못 꾼다"며 "군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상명하복 명령에 따라야 하는 현실도 이해하지만 이대로는 학군 장교들의 미래는 없다. 학군단이 사실상 죽어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워라밸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제공하는 간부 숙소도 열악해 삶의 질이 악화됐다고 호소했다. 그는 "2~3평 남짓한 좁은 방에 3명이 생활했다. 2인실이라 침대가 2개뿐이어서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 했고 책상도 하나뿐이라 숙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잠자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자신을 공군 초급간부라고 소개한 한 제보자가 지난 2월 모 비행단 독신자 간부 숙소 모습이라며 공개한 사진 [사진=사회관계망서비스(SNS)]

軍전문가 "국가 안보 심각한 상황, 급여·복지·주거 향상해야"
정부도 학군사관 지원율이 해마다 급감하자 복무기간 단축(현행 28개월에서 24개월로 단축)에 속도를 내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반면 대다수 학군 장교는 단순히 복무 기간 단축만 할 게 아니라 초급장교를 비롯한 학군사관 전반의 임금·주거 처우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현재 초급 장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학군사관 지원율 급감은 국가 안보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젊은 세대를 군 장교로 유입시키는 매력적인 군대를 만들 수 있도록 급여·복지·주거 등에서 병사와는 차별화되는 학군사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