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눈치게임 언제까지] 文정부 '판박이' 포퓰리즘 개선될까

2023-04-04 17:08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기·가스요금 동결 등 윤석열 정부의 여론 영합적 행보가 물가 안정화를 계기로 변화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4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4.2%에 그치면서 향후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고금리·고물가는 현 정부 운신 폭을 좁히는 핵심 변수였다. 치솟는 물가에 '난방비 폭탄' 논란까지 겹치자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계속 주저해 온 게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한국전력·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과 개최하려던 긴급 경영상황 점검회의를 시작 한 시간 전 돌연 취소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열린 당정회의 때도 여론을 의식해 요금 인상을 보류하는 쪽으로 결정한 바 있다.

여당은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국민 부담으로 직결될 사안인 만큼 정부와 해당 공기업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전 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무 부처 산업부 측 요청은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지속적으로 비판한 문재인 정부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하반기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시화하면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뛰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대선을 치른 지난해 3월까지 가스요금은 7차례나 동결됐다. 

당시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라고 비난했던 게 현재 여당이다. 최근 요금 동결 기조도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금을 인상하기로 했으면 로드맵을 세우고 에너지 취약 계층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가다 말다 하는 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국정 동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말 발표한 600억원 규모 내수 활성화 대책도 지난 정부 때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국내 관광객 100만명에게 3만원 상당 숙박쿠폰, 중소·중견기업 근로자와 소상공인 19만명에게 휴가비 10만원을 지급하는 게 골자인데 물가 잡기 기조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실효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우 교수는 "쿠폰을 받으면 관련 소비는 늘겠지만 되레 다른 소비는 줄이는 '한계소비성향'을 보이게 될 것"이라며 "임팩트 없이 생색만 내는 효율성 떨어지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정책으로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세가 꺾이는 조짐을 보이는 건 정부로서는 반길 만한 소식이다. 고물가에 따른 민생고 완화는 가스·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에 나설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쿠폰 뿌리기 등 여론 잡기용 선심성 정책을 추진할 유인도 줄어든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물가 관련 압박만 작아진다면 여론을 살피는 정책에 집중하기보다 경제 전반에 걸친 큰 그림을 그리기가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