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레이드 판이 바뀐다]④ 경상수지 흑자 1조弗 신화 '위태'

2023-03-28 07:41
글로벌 경제 둔화, 기업 실적 부진에 배당수입 감소 전망
상품·서비스·본원소득 모두 적자인 '트리플 적자' 우려도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가 경상수지 누적 흑자 1조 달러를 눈앞에 두고 '개발도상국 신화'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반납할 위기에 처했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경상수지 흑자 유지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둔화와 기업 실적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적자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 올해가 '깔딱고개'

27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8~2022년 누적 경상수지 흑자 9927억466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성적표에 따라 1조 달러를 넘어설 수 있었다. 

다만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298억309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500억 달러 넘게 줄었다.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영향으로 수입액이 전년보다 1000억 달러 이상 늘어 상품수지 흑자 폭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김영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부국장은 "경상수지 흑자 폭 축소는 일본·독일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수출 강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높은 에너지 가격, 주요국 성장세 둔화, 정보기술(IT) 경기 하강 등 어려운 여건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우리나라 같은 비기축통화국이 대외 신인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거나 혹여 적자 전환이라도 발생하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 교역 조건 악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상저하고' 장담 못해, 경상수지 적자 예측도 

올해 경상수지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 여파로 전년 대비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200억 달러 정도 흑자 달성을 공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26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최근 월별 경상수지는 흑자와 적자가 번갈아 나타나는 혼조세를 보인다. 

지난 1월 경상수지는 45억2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2억2000만 달러 적자에서 12월에는 배당소득 수지 증가 등으로 힘겹게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적자 전환한 것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상품수지 흑자를 통해 고질적인 서비스수지 적자를 메워 왔지만 지난 1월에는 믿었던 상품수지까지 부진에 빠지며 결국 적자로 돌아섰다. 

당장 2월에도 경상수지 흑자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은 역시 2월부터 상품수지가 상당 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전체 경상수지 적자 탈피는 자신하지 못했다. 

여기에 국내 기업 배당금 지급이 3~4월에 집중돼 본원소득수지(임금·배당·이자 등 수입과 지급 간 차이)도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자칫 올봄에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가 모두 적자로 돌아서는 '경상수지 트리플 적자'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당장 글로벌 교역 환경이 개선될 기미도 없다. 경상수지를 악화시킨 주범인 상품수지 적자가 이른 시일 안에 해소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20일 현재 누적된 무역수지 적자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241억300만 달러로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478억 달러) 대비 절반을 넘어섰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12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반도체 시황 회복에 힘입어 수출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년째 무역수지 악화가 이어지고 있어 경상수지도 지속해서 악화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연간 경상수지 흑자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