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적신호] 금융시장 불안에 자금조달 올인하는 대기업···회사채 증액발행 러시

2023-03-27 05:55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대기업 계열사들이 자금 조달을 서두르고 있다. 달러와 국고채 등 안전자산의 투자매력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대기업그룹 계열사의 우량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아직까지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SVB 파산 이후에도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기존의 통화 기조를 이어가면서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그룹 계열사가 저마다 회사채 증액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증액 발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K네트웍스와 E1은 다음달 초 회사채 발행을 위해 이번주 수요예측을 진행할 방침이다. 각각 모집액은 1500억원과 1000억원이지만 수요예측에서 흥행한다면 발행액을 2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대기업그룹 계열사는 SVB 파산 이전이던 이달 초까지 이 같은 회사채 증액 발행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LG전자는 이달 초 당초 3500억원 규모로 계획했던 회사채 발행 규모를 7000억원으로 늘렸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결과 모집액의 7배가량인 2조5850억원의 자금이 몰린 결과다.

롯데지주와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 28일 각각 3500억원과 3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마무리했다. 당초 각각 2500억원과 1500억원을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수요예측에서의 흥행을 바탕으로 증액 발행을 단행한 것이다.

이전까지 수요예측에서 흥행하더라도 기존 계획을 유지해 증액 발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그룹이 일제히 증액 발행을 통해 자금을 최대한 조달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이달 24일까지 기간 동안 회사채 발행액 규모는 31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22억원 대비 39.69% 늘었다. 같은 기간 발행액에서 만기 상환액을 제외한 순발행액 규모를 살펴보면 527억원에서 1378억원으로 161.48% 늘었다.

이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극도로 위축됐던 시장이 올해 초 유동성을 되찾으면서 기관투자자들의 유동자금이 우량 회사채에 몰리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일례로 AA급 3년물 금리는 지난해까지 5%를 넘었으나 올해 3% 후반으로 크게 낮아졌다. 기업 입장에서 이자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의미다. 이에 기업들 사이에서는 지금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이자 비용이 가장 낮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향후 회사채 시장이 경색될 수 있어 가능할 때 최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시각인 것으로 파악된다. SVB 파산 이후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어 향후 유동성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은 대기업그룹 계열사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으나 향후 금리가 더 올라가거나 시장에 충격이 심해진다면 달러나 금, 국고채에 자금이 몰릴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SVB 파산 등 시장 충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금리를 높이면서 대기업그룹 계열사들이 지금 시점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가장 이자비용이 저렴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금리가 오르거나 업황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