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의 좌고우면] 외교는 술자리가 아니다

2023-03-25 07:00

이성휘 정치부 기자

"외교(外交, Diplomacy)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외교부 홈페이지)
 
외교는 흔히 '총성 없는 전쟁'으로 표현된다. 전쟁이 '자국의 의지를 상대 국가에게 강요하기 위한 폭력적 행위'(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라면, 외교는 자국의 의지를 상대 국가가 수용하도록 만드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그 차원에서 전쟁은 외교의 수단이자 때로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외교는 어렵다. 협상에서 99개를 합의해도 단 1개가 어긋나 모두 물거품이 되거나, 99개에서 얼굴을 붉히며 충돌해도 단 1개의 공통 인식을 고리로 서로 악수하고 조약을 체결하는 일이 생긴다. 국익은 다양하고 그것을 둘러싼 적과 동지를 구분하기 어렵기에 외교는 더더욱 어렵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태, 특히 최근 한‧일 정상회담 과정을 살펴보면 '외교는 어렵다'는 나의 생각은 일종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아내는 '상호주의 원칙'이 외교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내가 먼저 선의를 보이면 상대방도 호응할 것'으로 믿는 듯하다. 세계 외교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지난 1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우리 참모진, 그리고 외교부의 입장은 사사건건 우리가 하나 이번에 뭘 할 테니 당신네 일본 정부는 이걸 해다오 하는 접근을 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만나 '1차는 내가 쏠게, 2차는 네가 쏴라'는 말이 연상된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 언론에선 고위관계자 등을 인용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위안부 합의 이행' 등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일본이 과연 2차를 쏠 생각이 있는 친구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끝으로 윤 대통령은 일본 제1야당 입헌민주당 지도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야당을 직접 설득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측은 "일본은 여야 없이 한‧일 관계 개선을 환영하는데, 한국 야당은 반대만 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만약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로부터 대한민국 국민 65% 이상이 긍정 평가하고,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국내 언론이 한목소리로 환영하는 '양보안'를 이끌어냈다면, 그래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반대하고 우려했을까.
 
일본 측에서 "우리는 학수고대했는데,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걱정해주는 내용이 윤석열 정부가 자랑하는 성과물이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빼앗긴 건 되찾아 올 수 있지만, 내어준 건 되돌릴 수가 없다"는 대사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