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결산] "한·일 직접 정보 교류해야"…"日 사과 없어 '여론 수습' 중요"

2023-03-19 18:45
전문가 제언...보수 진영 "관계 악순환 끊은 것 호평"
진보 진영 "외교성과 아예 없다고 봐야…이미지 정치 한 것"

전문가들은 한·일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양국 간 외교·안보 핫라인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유사시 정보 교환이 빨라지면 한·미·일 공조도 공고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양국 간 신뢰를 바탕으로 과거사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반도체 등 경제안보 문제 협력,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완전 정상화 등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일본 측에서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란 지적도 나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사진=연합뉴스]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사진=연합뉴스]

◆보수 진영 전문가들 “유사시 한·일 간 직접 정보 공유 중요···尹 결단 내려”
 
보수 진영 학자들은 한·일 정상화를 위한 물꼬를 튼 지금부터가 특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한 번 만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논의의 시작, 그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강제징용 문제 등을 향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이미 있었고 그게 표명이 돼서 현재나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 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특히 북한의 무력 도발을 대비해 한·일 간 기민한 정보 교류를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한반도와 동북아 유사시 한·미·일 3자 간 정보 공유가 빨리 이뤄지기 위해 한·일 간 직접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북한에 대한 확실한 억제력이 생긴다. 지소미아 정상화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제징용 해법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 것이며 이제는 일본에 공이 넘어갔다고 본다”며 “이번 회담을 출발점 삼아 일본이 어떤 진정성 있는 행위를 할지 주목된다”고 했다.
 
또 다른 보수 진영 학자인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자고 한 것은 협상 관점에서 ‘결단’이며 이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으로 봐야 한다”고 호평했다.
 
그는 “우리가 1을 줬으니 일본에서 1을 받아야 한다는 관점이라면 박한 평가도 나올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한·일 관계의 무한 반복, 과거 퇴행적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결단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번 회담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양국 정상이 공동회견에서 ‘한·미·일 협력 프로세스’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 등이 세계 규범을 무시하며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신냉전 시대”라고 진단하며 “한·미·일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신냉전 시대에 새로운 전략적 공유가 필요하다”고 3국 공조를 강조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한동대 국제정치학 교수) [사진=연합뉴스]

◆진보 진영 “한·일 공동합의문도 없어···尹, 통 크게 지른 느낌”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너무 많다며 “망했다”는 혹한 평가를 했다.
 
그는 특히 경제적 외교 성과로 언급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수출 규제 해소에 대해서도 “이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품 상당 부분이 국산화를 이뤘고 수입 다변화가 됐다”며 “아무리 합리적 시선으로 봐도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컵에 물 반 잔을 채운 것이 아니라 일본 대 한국이 100대 0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1박 2일 초고속 외교는 ‘보여주기’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전체적으로 한·일 관계가 복원됐다는 것인데 이미 끊어진 것을 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경제외교 측면에서도 우리 대기업 경영자들을 1박 2일 동안 데려가서 어떤 큰 합의를 했을까. 그냥 이미지 정치를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보통 외교 성과를 '51대 49'라고 표현하는데 우린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 그 증거가 바로 한·일 정상 공동합의문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방적 발표였지 양국 정상 간 합의가 없었다”면서 “윤 대통령이 일본 전범 기업에 구상권 청구를 사실상 안 하겠다고 한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예민한 외교 문제일수록 협상해서 얻어야 하고 조건부로 해야 하는데, 우린 다 줘버렸고 아쉬울 게 없는 일본은 우리에게 준 게 없다”며 “결국 한·일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오부치 선언 계승만 말하고 사과 표명은 아예 없었다. 사과가 전제돼야 미래지향적 관계가 되는데 그런 것이 싹둑 잘려나갔다”고 부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외교 당국자였던 한 전문가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 측 취지는 바람직한 방향이었다”면서도 “좋게 말하면 통근 외교를 한 셈인데, 너무 서두르다 보니 외교적으로 정말 잘한 것인지 의문이 많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마치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처럼 여겨지는 국민 여론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은 한·일 관계가 완전히 닫히길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강제징용 문제를 치워버리고 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국내 반응에 어떻게 대처하고 각계 논의를 잘 담아내느냐가 중요한데 이번에 그냥 일본에 가서 (윤 대통령이) 지르고 온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