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권, 이달 1조원어치 채권 사들였지만…유동성 숨통 '글쎄'

2023-03-12 18:00
2개월 연속 순매수세…'사회적 책임' 촉구한 당국 압박 영향
유동성 리스크 여전…저축 보험금 12.8조, 자본증권 상환액 4.6조
킥스 수치 산출 본격화 시 리스크 연착륙 위한 채권매도 가능성

[사진=연합뉴스]


보험사들이 이달 들어 1조원에 육박한 채권을 사들이면서 두 달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보험업권 유동성에 숨통이 트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채권 순매수가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관계당국 압박에 따른 영향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올해 채권만기 및 콜옵션(조기상환권) 상환, 그리고 저축성보험 만기 규모가 18조원 안팎에 달해 채권 매도를 통한 유동성 확보 필요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1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이 이달 1일부터 12일까지 9464억원 규모의 채권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2월 한 달 동안 1조8859억원의 채권을 순매수한 데 이어 2개월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간 것이다. 보험사들은 통상적으로 채권 매수를 통해 자금을 굴려왔지만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금융권 채권시장이 술렁이자 지난해 9월부터는 주로 채권을 내다팔아 현금 확보에 주력해왔다. 실제 작년 12월을 제외한 2022년 9월 6317억원, 10월 2조2319억원, 11월 3조5534억원, 올해 1월 3조4918억원 규모로 순매도가 이뤄졌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채권 순매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업권 내 유동성 이슈가 완화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채권 현황을 환산해 보면 여전히 6595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순매수 움직임은 금융당국 압박 영향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가계와 기업의 경제난이 커지고 있음에도 보험권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이들을 향한 금융당국 시선이 따가운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앞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은행권에 칼을 겨눈 데 이어 보험업권에도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한 기관투자자로서의 역할 강화 행보라는 시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초 '보험업계 CEO 간담회'에 참석해 보험업권에 기관투자자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원장은 "보험업계는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마다 장기자금을 제공해 자본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며 "올해도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따른 정상기업의 부실화가 촉발되지 않도록 채권 매입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보험업계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생명보험사들의 저축성 보험금 지급 규모가 여전하고, 보험권 채권 조기·만기 상환액 규모가 상당하다는 측면에서도 채권 매수세가 오래 가지 못할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생보사 21곳이 판매한 저축성보험(이하 퇴직연금·연금저축 제외) 중 연내 만기가 도래한 보험금은 12조8358억원으로 추산됐다. 한국신용평가도 올해 보험업권 자본성 증권 조기·만기 상환 규모를 전년도(추정치 기준 2조1191억원) 대비 2배를 웃도는 4조6278억원으로 추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부터 새 보험 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수치 산출이 본격화될 경우, 유동성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잇단 채권 매도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라며 "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확충하는 방법도 있지만 상환 부담이 여전해 추후에도 채권 매도로 빠르게 유동성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