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조합장선거] 전국 4대 선거로 불리지만…뇌물·깜깜이 관행 여전
2023-03-03 04:00
오는 8일 농협·수협·산림조합 동시선거
농협과 수협, 산림조합 소속 전국 1347개 조합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로 투표에 나설 조합원 수만 202만9558명에 달한다. 규모가 방증하듯 선거철이 되면 전국이 들썩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사무를 위임 받아 관리하는 이유다.
과열된 경쟁은 늘 부작용을 낳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금품과 향응이 오가는 '돈 선거' 관행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중요성과 별개로 '복마전' 비판이 따라붙는 동시조합장선거의 내막을 들여다보자.
◆후보자 3분의 1 불법선거로 입건…"1억원 줄게 출마하지 마"
2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동시조합장선거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투표가 진행되는데,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과열·혼탁 조짐이 심상치 않다
조합장 선거가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과거 임명제였던 조합장은 1989년부터 직선제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다만 각 조합별로 선거를 치르는 탓에 조합장 뽑다가 1년이 다 지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2005년부터 산림조합을 시작으로 농협과 수협이 선거 업무를 선관위에 위탁했다.
이후 조합장 임기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 2015년부터 동시선거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조합별 선거 때부터 지적돼 온 돈 선거 관행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앞서 2019년 실시된 제2회 선거에서만 후보자 3474명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303명이 불법 선거 행위로 검찰에 입건됐다. 이 중 116명은 당선자였으며 전체 60% 이상이 금품선거사범으로 분류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불법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달 1일까지 선관위가 '돈 선거' 신고자에 지급한 포상금만 2억원(8건, 10명)이 넘는다.
예컨대 A조합 입후보 예정자의 측근이 조합원들에게 현금 수백만원을 제공한 건에 대해 포상금 1억원이 지급됐다. 또 B조합의 입후보 예정자가 다수의 조합원에 현금 수백만원과 음료 등을 제공한 건과 관련해 신고자가 6000만원의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
선관위는 금품 수령자가 자수한 경우 최대 50배로 부과하는 과태료를 감경·면제하고 있는데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금품을 받았다고 자수한 인원만 70여 명에 이른다.
현직 조합장이 같은 지역에 출마한 다른 후보에게 불출마를 대가로 매수를 시도한 사례도 적발됐다. 경남 지역의 현직 조합장 등 2명은 같은 경쟁 후보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현금 1억원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이어 6000만원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조합장 선거는 후보자와 조합원 간 친분 관계가 존재하는 데다 소규모 지역사회의 특성상 신고와 제보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돈 선거 관행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돼 왔고 범죄라는 인식도 부족해 예방·단속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직이 절대적 유리…선거규정 개선 시급
조합장 선거에 불법 행위가 판치는 이유로 불합리한 선거운동 규정이 꼽힌다. 조합장 후보자는 선거법에 따라 본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운동 방식도 벽보와 어깨 띠, 전화, 문자, 조합 홈페이지, 명함 돌리기를 제외한 다른 활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투표 전날까지 2주간 이어지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후보자 혼자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반면 현직 조합장들은 임기 동안 직위를 활용해 투표권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과 충분히 스킨십을 할 수 있다. 또 조합장 명의의 기부 활동은 금지되지만 조합 명의로는 기부가 가능해 판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 현직이 아닌 후보자는 얼굴 알리는 것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 금품 살포 등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다.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가 치러지면서 현직 조합장이 재선에 성공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 재선율은 73%(농협 기준)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예비후보기간 도입과 선거운동 방법 확대 △인터넷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실패하면서 올해도 현직이 득세하는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현직 후보의 비위 행위 등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폐쇄적인 선거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금품선거 관행과 현직 조합장의 장기 집권 구도를 깨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