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한국 대학이 가야 할 길 …학생들에게 묻다
2023-02-28 06:00
챗GPT가 단연 인기다.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들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생각하고 대화하는 새로운 단계의 인공지능마저 등장해 사람들은 호기심과 공포심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이런 기술발전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활용방안을 연구하고 도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회적 영향과 파장이 큰 분야는 아마도 교육 분야가 아닐까 싶다. 이미 며칠 전 교육부 장관은 2025년까지 초·중·고교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가장 인상적인 칼럼은 '챗GPT에 한국 대학의 혁신을 묻다'였다.(장대익, 경향신문 2023. 2. 21) 챗GPT는 한국 대학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1. 대학교육의 질적인 향상보다는 순위와 명성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둘째, 강의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고수하여 학생의 능동적인 학습이나 비판적 사고 능력의 향상을 꾀하지 못한다. 3. 대학 입학 전 과도한 입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가치 탐구보다 사회적 출세를 위한 학습에 집중한다. 4. 학생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진로 설계를 지원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의 대답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한국 대학의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더 나아가 필자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 챗GPT를 도입할 때 어떤 효과를 거둘지 챗GPT와 나눈 대화의 내용을 토대로 소개한다. 칼럼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경험을 맞춤화함으로써 교육의 플랫폼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다. 드디어 게임 체인저가 왔다.” 칼럼 게재 이틀 뒤에 발표된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근거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최근 수년간 지방소멸과 대학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던 필자는 흥미로운 화두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얼마 전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작별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문을 더 배워 고전번역의 길을 걷겠다는 학생, 출판편집인 양성학교에 진학하여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싶다는 학생 등 청년답게 그들의 미래는 다양했다. 물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당당하게 미래를 그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일단 시도해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지역대학 출신의 청년이 겪는 이중삼중의 어려움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흐뭇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감정이 내려앉았다.
한 친구가 근본적인 교육과정의 난맥상을 짚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 굉장히 모호합니다. 대학을 나와서 취업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과목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에 가서 자신의 지식을 더욱 쌓을 수 있는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두 가지의 애매하고 모호한 경계의 수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졸업역량인증제도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학생들을 자극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교육 컨셉(콘셉트)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그에 맞는 교수진을 구성하여 학생을 모집하든, 안동과 경북에 있는 사회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경북도 내에서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석학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내세워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모집하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학교는 대세에 맞추고자 취업 쪽으로 가고 있지만 아직도 자존심은 버리지 못해 애매하게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학교의 운영진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부족한 저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를 위하신다면 부디 우리 학교에 걸맞은 제대로 된 콘셉트를 잡아서 운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왜 진작에 이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학교의 문제, 학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했다. 교육 소비자의 측면에서 시스템을 바꾸자는 원칙을 수없이 되뇌면서 정작 교육 소비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학생이 이어받아 대학행정시스템의 문제를 질타한다. “우리 대학의 행정시스템은 너무 경직되어 있습니다. 국립대학이라서 그런지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기분이 듭니다. 직원들은 대체로 너무 딱딱하게 응대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그리고 군대식 문화가 있는 것인지 특정 직원에게 일이 너무 몰려있어, 정작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상담 선생님의 경우 상담 외의 업무가 너무 많아서 학생들의 상담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다른 직원들도 담당 업무 외의 일이 너무 많아서 정작 가장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각자가 맡은 업무를 책임지고 처리하고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수의 활동공간이 주로 연구실과 강의실에 한정되는 반면, 학생은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행정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과 항상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졸업을 위해 학사 관련 문의를 하고, 기숙사생으로서 각종 불편을 해소해달라고 직원에게 요구해왔을 것이다. 그 다양한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때, 그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의 삶을 세심하게 돌볼 생각을 미처 못했고,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으니 그냥 그대로 놔두어도 된다고 안이하게 반응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비판의 내용은 교육부와 대학 관계자를 향한다. 학교에서 시설물 유지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생 대부분이 불편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기숙사의 라디에이터가 수시로 고장 나 수리를 요청해도 제때 처리되지 않아 불편했던 경험은 아마 누구나 겪어봤을 겁니다. 단과대학 교양강의실의 의자 여러 개가 삐걱거리고 파손되어 있지만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시설물이 제때 유지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한 편입니다.”
실제로 건축한 지 40년이 넘는 인문대학 강의동의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사실 우리 대학의 문제만도 아니고, 국립대학의 낙후한 교육환경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교육부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지만, 학생들의 불만이 터지도록 지체되었다는 사실에 만시지탄을 느낀다.
졸업생과 나눈 대화 가운데 필자에게 대학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내용도 있었다. “요즘 입학생들의 진학 목적은 예전과 다르다. 공부 이외에 자기 삶을 즐기는 요소를 선호한다.” 졸업생들의 이 말에 나는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 교단에서 마주한 학생들의 느낌이 코로나 창궐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 캠퍼스는 도심에서 멀고 그나마 형성되었던 상권도 최근 들어 쇠락의 기미가 뚜렷하다. 그래서 즐거운 일상을 유지하려는 학생들의 욕구를 해소할 공간과 시설이 너무 부족하다. 애용하는 프랜차이즈점도 없고, 룸카페도 없다.” 필자는 학생들의 소원수리(訴願受理)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욕구를 가진 친구들에게 필자 나름의 학문과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강의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반성이 찾아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불만은 대학이 위치한 지자체 단체장에게도 향했다. KTX이음이 개통된 후 대학은 수도권에서 2시간 이내라는 시간 단축의 장점을 지속적으로 홍보해왔으나 정작 학생들 입장에서 심리적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타 지역과 지리적 접근성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안동에서 느끼는 심리적 접근성은 더 멀어졌다. 현재 기차역과 터미널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역사와 터미널이 시내 중심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 불편하다. 시에서 빨리 해결하길 바란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심리적 접근성’을 내세운 학생들의 불만을 듣고 있자니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불만을 갖고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까지 헤아리지는 못했다. 터미널과 기차역의 이전은 국토부와 안동시의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국립대 학생이 입는 피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와 처지가 비슷한 대학은 얼마든지 있다. 여러 사례들을 검토하여 관계기관들이 현명한 대안을 대학당국과 협의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교육개혁을 이야기하면서 늘 교육 수요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교육 수요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 교원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교원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처럼. 수도권 대학의 재학생, 지역대학의 재학생, 남학생과 여학생 등 다양한 층위에서 교육 수요자의 욕구와 기대를 듣지 않고 그들을 위한 대학을 개혁한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실로 오랜 세월 어불성설을 이루겠다고 그 많은 시간과 재원을 투입했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든다. 초·중·고 학생을 불러놓고 입시개혁에 관한 토론을 해본다면, 교육전문가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교육개혁이 진행되고 훨씬 생산적인 결론을 낼 수도 있다.
역지사지의 관점 혹은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충고를 되새기며 교육당국은 교육 수요자의 관점을 충분히 수렴하여 교육개혁을 진행함으로써 개혁의 결과로 미래세대가 행복한 학교와 대학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