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한국에 '인공태양' 뜬다... 핵융합 기술 상용화 추진

2023-02-23 17:33
과기정통부, 장기적인 핵융합 연구개발 추진 목표 제시
국내 기술에 국제적 협력 성과 더해 실현 가능성 검증
2035년부터 실증 반응로 착수... 2050년 상용화 가능성

플라스마 제어 실험을 위한 실험용 반응로 KSTAR 모습. 과기정통부는 KSTAR, ITER 등 사업을 통해 핵융합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할 계획을 23일 발표했다. 이르면 오는 2050년에는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이상우 기자]

한국이 오는 2050년 핵융합 발전 상용화를 준비한다. 이를 위한 실증 반응로는 2026년부터 개념설계에 착수하고, 이르면 오는 2035년 건설 여부를 결정한다. 실증 준비를 위한 반응로 운영 기술과 핵융합 원천기술 확보도 올해부터 가속화한다.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18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개최하고, 전력생산 실증 반응로 기본개념 등의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핵융합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분야"라며 "국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증 단계에서 핵융합 개발을 주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속 등장하는 꿈의 에너지원, 현실에서 구현

과학소설(SF)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슈트는 가슴에 달린 '아크 반응로'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손바닥 크기의 이 장치는 작은 금속 물질을 연료로 사용해 대형 원자력 발전소 수준의 전력을 생산한다.

영화 설정에서 아크 반응로는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고, 투입한 연료 대비 생산 효율이 높은 꿈의 에너지원으로 표현된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 '어벤저스'에선 주인공의 건물인 '스타크 타워'가 아크 반응로만으로 1년간 외부 전력 없이 운영될 수 있다고 소개되기도 했다. 군수 기업인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청정에너지 기업으로 사업을 전환할 수 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도 이처럼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태양이다. 알려진 것처럼 태양은 수소 핵융합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방출한다. 핵융합 반응은 태양 중심에서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의 수소원자가 날아다니다가 서로 융합하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헬륨으로 융합되는데, 이 과정에서 원자핵 질량이 일부 감소한다. 감소된 질량은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빛과 열로 방출된다.

우리는 태양을 간접적인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태양광이나 태양열 발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실제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를 모두 활용하기는 어렵다. 만약 지상에 태양을 만든다면 간접적인 방식을 넘어 이를 에너지원으로 직접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김효곤 기자]

◆수소폭탄 만들던 기술, 친환경 에너지 기술로 주목

핵융합 반응로는 이러한 태양의 구조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때문에 '인공태양'이라고도 불린다. 이 원리를 최초로 활용한 분야는 무기다. 1952년 미국은 핵융합 반응 원리를 적용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 기술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는 1958년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토카막' 장치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토카막은 플라스마를 가둬 상태를 유지하는 장치다.
 
핵융합 반응은 태양처럼 초고온·초고압 플라스마 상태를 지속해야 하는데, 플라스마는 쉽게 흩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토카막은 플라스마를 도넛형 진공튜브에 가두고, 강력한 자기장을 흘려보내 잡아두는 방식을 사용한다. 진공 용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내부에 불순물이 있을 경우 열손실이 발생해,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35개국이 참여해 개발하고 있는 국제 핵융합 실험 반응로(ITER) 역시 토카막 방식으로 구축되고 있다. 오늘날 플라스마를 가두는 여러 방식이 제안되고 있지만, 토카막은 비교적 간편한 방식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어 주목받는 기술이다.

핵융합은 기존 핵분열을 이용한 발전(원자력 발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반응로가 작동할 때만 방사선이 방출되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거의 없다. 반응로에 문제가 생기면 플라스마가 스스로 식어 반응을 멈춘다. 화석연료 대비 탄소 배출량도 아주 적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실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연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추출할 수 있다. 반응에 함께 쓰이는 삼중수소는 자연에서 거의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응로 내부에서 자급할 수 있다. 핵융합 반응에서 생기는 중성자를 이용해 리튬을 붕괴시키면 삼중수소가 생긴다. 중수소와 리튬만 공급하면 나머지 연료가 증식되는 셈이다. 이를 증식 블랑켓 기술이라고 부른다.

학계에 따르면 우라늄 235 1㎏을 연료로 핵분열 반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약 200억kcal다. 하지만 수소 1㎏을 핵융합으로 반응시키면 1500억Kcal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7배 이상 효율이 높은 셈이다.
 

도넛 모양으로 된 토카막 장치의 진공용기 내부 모습. [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섭씨 1억도 플라스마, 안정적 유지·운영이 관건

핵융합을 구현하기 위해 한국도 관련 기술을 지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07년 9월 한국이 자체 개발해 완공한 핵융합 실험 반응로 'KSTAR'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KSTAR도 앞서 언급한 토카막 방식을 이용한다.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선 자체 개발한 초전도체 자석을 이용한다. 이는 현재 구축 중인 ITER와 동일한 방식으로, ITER 운영 이전에 사전 실험장치로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 2021년 11월에는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KSTAR는 2026년까지 초고온 플라스마를 300초 이상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300초 간 제어할 수 있다면 24시간 반응로를 운전하는 기술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향후 연구원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접목해 KSTAR 실시간 모니터링과 가동 시뮬레이션을 수행, 운전을 최적화할 예정이다. 또 내부에서 플라스마와 접촉하는 장치 소재를 텅스텐으로 변경해, 성능도 강화한다. 2027년부터는 고성능 플라스마를 제어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개발해 실증 반응로 운영 기술도 확보할 계획이다.

동시에 한국은 ITER 사업에도 회원국으로 참여 중이다. ITER는 세계 각국이 공동 수행하는 핵융합 실험으로, 상용화를 위한 효율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12월 기준 ITER 공정률은 77.7%를 달성했으며, 국내 120여 개 기업이 관련 사업에서 약 7000억원 규모 사업을 수주하는 성과도 얻었다.

현재 ITER는 1이라는 연료를 넣었을 때 10의 효율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TER는 오는 2025년 12월 가동을 시작해 2037년까지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한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핵분열 연쇄반응에 성공한 이후 14년 만에 원자력 발전소가 만들어졌다. ITER가 핵융합 연쇄반응에 성공한다면, 2050년에는 상용 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든타임이 그리 길지는 않다. ITER에서 핵융합 연쇄반응에 성공했을 경우 실증을 위한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응용기술도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ITER 건설현장 전경. [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실증 위한 핵융합 반응로 짓는다... 2050년엔 상용화 목표

KSTAR와 ITER를 통해 확보된 기술은 향후 한국이 건설할 실증 반응로에 적용된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부터 실증로 설계 TF를 구성해 단계적 설계에 들어간다. 오는 2030년까지 개념설계를, 2035년까지 공학설계를 마치고 이후 건설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로선 관련 기술이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지만, 기술이 완성되는 동시에 실증을 추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ITER의 실험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2035년이다. 한국은 이후 ITER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하고, 실증 반응로 건설 추진 여부를 확정한다. '핵융합 전력생산 실증 반응로 기본개념'은 이를 전제로 현재 기술 수준과 기술확보 가능성 등을 고려한 로드맵이다.

실증 반응로 목표는 일반적인 원전 1기 발전용량의 절반인 500MWe 수준으로 잡았다. 또한 증식 블랑켓 기술을 통해 삼중수소 유효 자급률을 1 이상으로 구현해야 하며, 전력생산 단가 역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증식 블랑켓 기술 확보는 유럽연합과 공동 추진한다.

오태석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ITER 회원국을 포함해 5~6개 국가가 실증 반응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 기술 확보에 있어서 자체 개발도 중요하지만, 선도국과 국제적인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수준과 향후 개발 계획 등에 대한 연구개발 로드맵도 올해 안에 수립해 추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